[시골살이 일기 67] 우리가 있는 곳
― 천등산 꼭대기를 오르면서
어른들은 멧길을 타고 오르면서 가슴을 활짝 틔운다고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멧길을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푸른 바람을 마시고 푸른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멧길을 타고 오르내릴 적에 가슴을 활짝 틔우면서 푸른 마음이 될 수 있을 테지요. 독일에서는 이러한 대목을 잘 헤아려 ‘숲 유치원’을 만듭니다. 한국도 일본을 거쳐 ‘숲 유치원’을 받아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겨레는 예부터 언제나 ‘숲마을’이었고 ‘시골마을’입니다. 굳이 ‘숲 유치원’이나 ‘숲 학교’를 만들지 않아도, 늘 숲을 타고 멧길을 오르내렸어요. 나무를 하러 숲에 깃들지요. 지게를 짊어지고 멧길을 타고내렸습니다. 참말 예전에는 어른도 아이도 언제나 숲에서 살거나 놀았어요.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에서든 숲을 누리고 멧자락을 품에 안으며 살거나 놀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등산장비를 갖춘 어른들만 멧길을 오릅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숲이나 멧자락을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가 숲과 멧자락을 가로지르거나 구멍을 내면서 지나갑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아 숲이든 멧자락이든 쳐다볼 겨를이 없이 바삐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움직이기만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멧길을 오릅니다. 고흥에 뿌리를 내린 지 네 해째 되는 올해에 드디어 아이들과 천등산 꼭대기까지 가 보자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더 어릴 적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이제 이 아이들과 멧길을 오르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작은아이가 많이 어리니까 자전거를 끌고 오르고 나서, 내려올 적에는 씽 하고 달립니다.
멧꼭대기에 이르러 자전거를 눕히고 아이들이 뛰놀도록 한 다음, 나는 지친 몸을 추스르려고 길게 뻗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지게에 두 아이를 앉히고 멧길을 걸어서 올라올 때가 한결 수월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멧길을 천천히 자전거를 끌면서 올라오는 동안, 아이들은 숲노래를 듣습니다. 멧빛을 바라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터가 어떠한 무늬이고 소리인가 하고 온몸으로 느낍니다. 풀벌레가 울고 새가 날며 골짝물이 흐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숲을 생각합니다. 멧골에서 지내는 사람은 늘 멧자락에 마음을 둡니다. 그러니까, 숲사람은 사랑과 꿈을 생각할 뿐, 전쟁이나 경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멧사람은 이야기와 노래를 헤아릴 뿐,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도시와 문명을 이루는 사회에는 끔찍하도록 피가 튀기는 다툼(경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공장에서도 ‘어깨동무’ 아닌 ‘경쟁’이 도사립니다. 도시와 문명을 이루더라도 숲과 멧자락이 함께 있을 노릇입니다. 시골에서 살자면 마을과 집이 제대로 숲이랑 멧자락하고 어울려야 합니다. 4347.7.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