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도시락



  일산 할머니한테서 받은 도시락을 고흥집에 와서 비로소 끌른다. 시외버스에서 먹일까 하다가 그만둔다. 시외버스에서는 고속도로 쉼터에서 장만한 마실거리와 호두과자만 먹인다. 과자 몇 점 집어먹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시외버스에서 그동안 많이 시달려 본 탓인지 좀처럼 이것저것 먹을 생각을 않는다. 처음에는 큰아이가 아버지 어깨와 무릎에 기대어 잠들고, 나중에는 작은아이가 아버지 어깨와 무릎에 기대어 잠든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으로 들어올 적에는 둘 모두 기운이 났는지, 한 시간 내내 웃고 떠드느라 법석을 떤다.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오니, 큰아이는 맨 먼저 만화책을 찾는다. 작은아이는 맨 먼저 ‘집에 있는 장난감 자동차’를 찾는다. 나는 맨 먼저 마당 후박나무한테 인사하고 빨랫대를 닦은 뒤 집안 바닥을 마른걸레로 훔친다. 일산에서 빨았으나 덜 마른 아이들 옷가지를 마당에 널고, 나부터 씻은 뒤 내 옷가지를 빨래해서 넌다. 아이들은 씻을 생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시외버스에서 내내 ‘춥다’고만 했고, 아이들을 챙기고 짐을 짊어지느라 땀을 흘린 사람은 나 혼자이다.


  집에 닿은 뒤 ‘시골물’을 한 잔씩 마시도록 한다. 나는 석 잔 마신다. 아이들이 저마다 놀면서 한 시간쯤 지나니, 작은아이가 먼저 “배고파요.” 하고 말한다. 큰아이한테 묻는다. “벼리야, 너도 배고프니?” “응.” “그러면, 먹자.”


  일산 할머니가 마련해 준 도시락을 꺼낸다. 나도 끼어서 먹을까 하다가, 나까지 먹으면 밥이 모자라니, 아이들만 먹인다.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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