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아이한테 선물하기


  우리들은 늘 선물을 합니다. 무엇이든 선물합니다. 때로는 기쁨을 선물하고, 때로는 슬픔을 선물합니다. 때로는 밥을 선물하고, 때로는 굶주림을 선물합니다. 어느 선물이든 선물입니다. 더 나은 선물이나 덜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다만, 배부름이 아닌 배고픔을 선물한다면 괴로울 수 있습니다. 배고픔이 아닌 배부름을 선물한다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때에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배고픔을 선물받는 느낌은 어떠한가요? 배부름을 선물받는 느낌은 어떠한가요? 이 느낌 그대로, 내 이웃한테 내가 무엇을 선물하는지 헤아려 보셔요. 나는 이웃한테 무엇을 선물하는 삶인가요. 내가 아는 이웃과 모르는 이웃한테, 내가 이름과 얼굴을 아는 이웃한테, 또 내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한테 무엇을 선물하는 삶인가요.

  어른은 아이한테 언제나 선물을 합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학교를 선물하기도 하는데, 그냥 학교가 아닌 ‘입시지옥 학교’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들은 투표권을 손에 쥐고 교육감을 뽑습니다. 교육감이 누가 뽑히는가에 따라 ‘입시지옥 학교’는 더 끔찍해지기도 하고, 덜 끔찍해지기도 합니다. 다만, 어느 누가 교육감이 되더라도 ‘입시지옥 학교’는 안 사라집니다.

  대통령을 잘 뽑으면 ‘입시지옥 학교’는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대통령과 교육감을 우리가 투표권을 손에 쥐고 뽑듯이, 교장이나 교사도 우리가 투표권을 손에 쥐고 뽑을 만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과 교육감과 시장과 군수와 구청장까지 우리 손으로 뽑듯이, 아이들이 하루 내내 지내는 학교를 맡는 우두머리인 교장도 우리가 뽑아야 옳은 일은 아닐까요. 아이를 늘 마주하는 교사도 우리가 뽑아야 옳은 일은 아닌가요.

  그림책 《스미레 할머니의 비밀》(어린이작가정신,2011)을 읽습니다. 일본사람 우에가키 아유코 님이 글과 그림을 빚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스미레 할머니’는 나이가 많이 들어 눈이 어둡습니다. ‘아직 젊은’ 할머니일 적에는 스스로 바늘귀에 실을 꿸 수 있었으나 ‘꽤 늙은’ 할머니가 된 뒤에는 혼자서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해요. 언제나 이웃을 불러서 실을 꿰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스미레 할머니는 바느질을 잘하기로 소문났어요. 옷은 물론 앞치마며 쿠션, 커튼까지 뭐든지 잘 만들어요(3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스미레 할머니뿐 아니라, 우리 둘레 거의 모든 할머니는 바느질을 잘하십니다. 우리 둘레 거의 모든 할머니는 바느질뿐 아니라 살림을 아주 잘하십니다. 밥도 잘하시고, 떡도 잘 빚으시며, 국도 맛나게 잘 끓이셔요. 게다가 할머니 손은 약손이에요. 할머니가 살살 어루만지면 아픈 데가 말끔히 낫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부터 이렇게 놀라운 빛이었을까요? 할머니는 언제부터 이처럼 바느질이건 살림이건 밥이건 떡이건 국이건, 게다가 약손 노릇에다가 텃밭에다가 모든 일을 척척 잘하셨을까요?

  그런데, 하나를 더 헤아리면, 할머니는 가방끈이 짧아요. 우리 둘레 거의 모든 할머니는 예부터 학교 문턱은 밟은 일이 아주 드뭅니다. 할머니는 글을 학교에서 익힌 일조차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 우리 둘레 참 많은 할머니는 혼자서 조용히 글을 익히시곤 했고, 아주 빨리 익힐 뿐 아니라, 편지도 참 멋지게 씁니다.

  할머니도 아이로 태어납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른으로 살면서 어느덧 할머니 나이가 됩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 지구별에서 저마다 어떤 빛으로 하루하루 일굴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어버이한테서, 또 이녁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고운 사랑을 날마다 받아먹으며 살지 않았을까요.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도 사랑스럽고, 사랑을 늘 받아먹다가 이웃과 나누는 삶을 짓는 어른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적에도 한결같이 사랑스러우리라 느껴요.

  다시 말하자면, 아이와 어른은 같습니다. 아기와 할머니는 같습니다. 아이와 어른도 똑같이 맑은 빛이고, 아기와 할머니도 똑같이 밝은 숨결입니다.

  “할머니와 친구들은 거미가 살고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로 갔어요. 직박구리가 부탁했어요. ‘거미야, 실 좀 나누어 주렴.’(25쪽)”과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개구리하고 도란도란 속삭입니다. 직박구리하고도, 거미하고도, 들과 숲에 깃든 모든 목숨하고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할머니가 되었기에 이처럼 거미나 직박구리나 개구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모르나,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거미나 직박구리나 개구리하고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다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거미나 직박구리나 개구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잊었을 뿐이에요. 우리 스스로 잃었을 뿐이에요.

  참새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안다면, 참새와 함께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터전으로 마을과 집을 가꿉니다. 들풀과 나무하고 이야기를 섞을 줄 안다면, 들풀과 나무랑 함께 푸르게 살아가도록 즐거운 터전이 되게끔 마을과 집을 가꾸지요. 그렇겠지요. 우리들은 이웃하고 오순도순 마을을 가꿉니다. 우리들은 동무하고 알콩달콩 삶을 짓고 사랑을 길어올려요.

  선물은 낯익은 사람한테만 하지 않습니다. 선물은 낯선 사람한테도 함께 합니다. 씨앗을 심는 손길이 선물하는 손길입니다. 나무를 함부로 베는 손길이 선물을 함부로 짓밟는 손길입니다.

  천성산 지킴이가 되었던 지율 스님은 내성천 지킴이로 살아갑니다. 천성산 꼭대기에 있던 군부대가 떠난 뒤, 천성산 꼭대기에 처음으로 올라간 지율 스님은 그곳에서 늪을 보았다고 해요. 지구별에서 보기 드문 무척 아름다운 늪이 천성산에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늪을 군부대는 그동안 함부로 짓밟았고, 정부에서는 고속철도를 놓는다면서 마구 파헤쳤어요. 더 들여다보면, 우리 정부는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놓고, 국립공원 옆에 골프장이나 공장을 쉽게 허가하며, 아름다운 시골마을에 핵발전소를 짓습니다. 그곳이 아니면 고속철도나 고속철도를 어디에 놓느냐고도 하고, 골프장과 공장과 핵발전소를 안 지으면 어떡하느냐고도 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봐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선물은 고속철도나 고속도로여야 할가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골프장과 공장과 핵발전소밖에 물려주지 못하나요.

  아름다운 삶을 물려주면서 착한 사랑을 선물로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빕니다. 고운 꿈을 물려주면서 참다운 사랑을 선물로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빕니다. 아이들은 돈이 아닌 사랑을 바라요. 아이들은 부동산이 아닌 사랑을 기다려요. 4347.7.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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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4-07-07 16:06   좋아요 0 | URL
마음에 확 와닿는 말씀이네요,
제가 류가 어릴적에는 정말 사랑으로 잘 키우려 노력했는데 요즘 너무너무 욕심 많은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닥달만 하고있으니 또 반성하고갑니다,

숲노래 2014-07-07 17:07   좋아요 0 | URL
욕심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에는 늘
사랑이 짙게 깔리면서
다 함께 늘 웃을 수 있으리라 믿어요.

칠월 칠일... 양력이지만,
즐겁게 하루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