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골 졸업사진첩 - 시간에게 길을 묻다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엮음 / 아카이브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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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7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진안골에서 공동체박물관을 하시다가

전주로 옮겨 서학동사진관을 하시는

김지연 님이 늘 새롭게 기운을 내어

아름다운 사진빛을 밝히시기를 빕니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0



사진기 없는 사람한테 사진

― 사진에게 길을 묻다, 진안골 졸업사진첩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 엮음

 아카이브북스 펴냄, 2008.4.12.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렸던 김지연 님은 전라북도 전주로 일터를 옮겨 ‘서학동사진관’을 엽니다. 진안에서 꾸린 계남정미소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을 선보이기도 했고, 《정미소》(아카이브북스,2002)와 《나는 이발소에 간다》(아카이브북스,2005)와 《우리 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아카이브북스,2008)과 《근대화상회》(아카이브북스,2010)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용담 위로 나는 새》(아카이브북스,2010)를 선보이면서 계남정미소를 ‘공동체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꾸린 넋을 보여줍니다. ‘용담댐’을 둘러싸고 사라져야 한 마을과 얽힌 이야기를 조림초등학교 교장이던 전형무 님이 갈무리한 적이 있기에, 이를 차근차근 되살리면서 진안골에서 보금자리를 떠나거나 옮기거나 잃어야 했던 12616명에 이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주었어요. 이와 함께 2008년에는 《사진에게 길을 묻다, 진안골 졸업사진첩》(아카이브북스,2008)을 내놓았습니다.


  사진책 《사진에게 길을 묻다, 진안골 졸업사진첩》은 책이름 그대로 졸업사진책을 보여줍니다. 진안골에서 나온 졸업사진책을 하나둘 그러모아서, 이 졸업사진책에 깃든 사진을 보여주고, 졸업사진책마다 묻어난 이야기를 꺼내어 펼칩니다.


  김지연 님은 ‘낡은 방’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방’에서 홀로 지내는 시골 할매와 할배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해요. ‘낡은 방’을 보면 ‘진안골 졸업사진책’이 떠오르고, ‘진안골 졸업사진책’을 보면 ‘낡은 방’이 떠올라요. 왜냐하면, 진안골 졸업사진책에 나오는 어린이는 어느새 늙고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낡은 방’을 지키는 할매나 할배가 됩니다. 낡은 방을 지키는 할매와 할배는 지난날 들과 숲을 쏘다니면서 뛰놀던 ‘진안골 졸업사진책’ 주인공입니다.





  아마 어느 할매와 할배는 학교 문턱을 못 밟았을 수 있습니다. 학교 문턱은 밟았으나 얼마 못 다니고 그만두어야 했을 수 있습니다. 여섯 해 국민학교(예전에는 국민학교였으니까요)를 마치거나 세 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쳤어도 졸업사진책을 장만할 돈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기 없는 사람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기가 없으니 수학여행이나 봄소풍이나 운동회를 할 적에 단체사진으로 처음 찍히는데, 졸업을 앞두고 비로소 한 장이나 두 장쯤 더 찍히는 사람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더욱이, 사진기뿐 아니라 돈도 없어서 ‘사진으로 찍혔’으나 사진 한 장 건사할 수 없는 사람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졸업사진책을 장만하지 못해 그예 마음속에만 ‘사진으로 찍힌 모습’을 그리는 사람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 빛바랜 초등학교 졸업사진에서 희미해진 시력으로 자신의 얼굴이나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 빛나던 소년기며 청춘의 꿈은 어디로 묻혀버리고 굳은 얼굴에 주름진 얼굴뿐인가 ..  (머리말/김지연)



  국민학교 졸업사진책은 지난날 어린이 삶을 얼마나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중·고등학교 졸업사진책은 지난날 푸름이 삶을 어느 만큼 밝힐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모든 모습을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아주 작은 조각만 보여준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 다큐멘터리로 찍는 사진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어느 만큼 보여줄까요. 다큐사진이 보여주는 모습과 빛과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얼마나 커다란 조각이 될까요.





  《사진에게 길을 묻다, 진안골 졸업사진첩》을 넘기면 거의 모두 단체사진입니다. 자그마한 학교에서는 자그맣게 졸업사진책을 내놓습니다. 퍽 예전에는 아이들 숫자가 퍽 많았으나, 요즈음으로 올수록 아이들 숫자가 줄어듭니다. 어느 해에는 아이 숫자보다 교사 숫자가 많습니다. 이러다가 끝내 시골마을 조그마한 학교는 문을 닫습니다. 용담댐이 들어서면서 사라져야 한 학교가 있으나 용담댐이 아니어도 새마을운동과 도시화 물결을 타면서 시골은 줄어들어야 했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 시골내기로 살도록 하는 교육은 예나 이제나 없어요. 농업고등학교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농업중학교나 농업초등학교는 아예 없어요. 시골사람은 아이들한테 시골일, 그러니까 흙일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못해요. 학교교육은 오로지 ‘도시에 있는 학교’에 보내는 데에 눈길을 맞추고, ‘도시에 있는 큰 학교’는 아이들이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나 가게 일꾼이나 전문직이나 예술가 같은 어른이 되도록 이끕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 가운데,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가운데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넌 앞으로 커서 농사꾼이 되어 들과 숲을 지키면 참 아름답겠구나’ 하고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 이 ‘졸업’ 전을 기회로 한 지역사회의 모태를 다시 한 번 추억하고 감싸안고 발전하는 문화적 분위기로 가꾸어 가고 싶습니다 ..  (머리말/김지연)



  진안골 졸업사진책을 들여다보면, 더러 ‘시골일’ 모습이 보입니다. 시골일이란 무엇일까요? 모내기와 풀베기입니다. 소먹이기와 벼베기입니다. 나락을 말리거나 절구질을 하거나 베틀을 밟는 일이 시골일입니다. 모시나 삼에서 실을 얻어 바느질을 할 적에 시골일입니다. 나무를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가마솥에 밥을 짓는 일이 시골일입니다. 거름을 그러모으고 흙을 일굴 적에 시골일입니다.


  여러 시골마을 졸업사진책을 보면, 웬만해서는 ‘시골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골학교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자주 하거나 늘 하거나 으레 하는 일이란 시골일이지만, 막상 졸업사진책에는 시골일을 안 담으려 합니다. 커다란 학교 건물을 보여주려 합니다. 무언가 대단하다 싶은 ‘애국조회’나 ‘제복 입은 사열’이나 ‘시가지 행진’을 보여주려 합니다.





  고개를 넘고 넘어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 무척 많았어요. 교사라면 사택에서 지냈을 테지만, 아이들은 무척 먼 데에서 두 다리로 걸어서 학교를 다녔어요. 몇몇 졸업사진책에는 ‘고개 넘어 학교 오는 아이’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요. 이런 사진은 누가 찍어서 남겼을까요. 십 리나 이십 리가 되는 멧길을 넘고 넘어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발자취를 졸업사진책에서 보여주지 않으면, 이러한 발자취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옛날에 아이들이 새벽바람으로 멧골을 넘고, 밤바람으로 다시 멧골을 넘던 이야기를 옛날 아이들이 스스로 사진으로 찍어서 남길 수 없어요. 아이들이 새벽과 밤마다 흘린 땀을, 학교를 다니면서 땀을 흘리면서 옴팡 젖은 옷을, 늘 땀내 풍기는 옷을 입으며 작은 교실 작은 책걸상에 앉은 아이들 눈빛을 사진으로 남긴 한국 사진작가는 아직 없습니다.


  졸업사진책에 깃든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까요. 시골집 사진틀에 걸린 사진은 무엇을 말할까요. 모를 심거나 나락을 베거나 말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절구를 찧거나 멧돌을 돌리거나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밥그릇에 밥을 퍼서 밥상에 올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소한테 먹일 풀을 베거나 깊은 멧골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예전에는 드물었고, 오늘날에는 찍을 수 없습니다. 참말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한겨레 삶을 보여주는 사진이란, 우리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진이란, 들과 숲하고 어깨동무하던 수많은 사람들 빛과 숨결을 보여주는 사진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 단짝 친구는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혹은 먼저 가 버린 건 아닐까. 돋보기를 끌어당기며 빛바랜 사진 속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얼굴과 학교 교정을 눈으로 더듬어 본다 ..  (머리말/김지연)




  연필과 종이가 없던 사람은 모든 이야기를 머리에 담았습니다. 책이 없던 사람은 모든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사진기가 없던 사람은 모든 꿈과 사랑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지갑이나 사진틀에 사진 한 장 없더라도, ‘낡은 방’에 깃든 허리 구부러진 시골 할매와 할배는 언제 어디에서나 아련한 옛일을 그림을 그리듯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녁한테 찾아와서 말을 여쭈면, 이녁이 어리거나 젊은 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밥을 먹었으며 어떤 논밭을 부치면서 땀흘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참말 그림을 그리듯이 들려주곤 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이들은 어떤 모습을 담을까요. 사진에 담긴 모습과 사진에 안 담긴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진에 담으려는 모습과 사진에 담으려는 생각을 미처 못 하는 모습은 얼마나 다를까요.


  진안골 아이들이 졸업사진책에서 웃습니다. 진안골 어른들이 졸업사진책에서 아이들과 어깨를 겯고 웃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을 찍은 아이가 있습니다. 찍힌 사진이 어떤 곳에 어떻게 남을는지 모르는 채 그냥 사진에 찍힌 아이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해묵은 졸업사진책’을 모아서 이 졸업사진책에 깃든 사진으로 ‘옛날 모습’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자체나 문화예술단체에서 이런 일을 합니다. 이런 움직임도 좋고 저런 일도 좋습니다. 다만, 우리는 한 가지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졸업사진책은 ‘찍는 사람’ 눈길이고 ‘기록하는 사람’ 눈높이입니다. 졸업사진책에 찍히지 않은 눈빛과 ‘기록되지 않은 사람’ 눈썰미를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들 가슴마다 애틋하거나 따스하게 드리운 온갖 빛과 노래를 읽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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