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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이야기 - 민족사진가협회 자료집
민족사진가협회 엮음 / 현자 / 2006년 12월
평점 :
찾아 읽는 사진책 179
사람한테서 나오는 이야기
― 사람과 이야기
민족사진가협회 엮음
현자 펴냄, 2006.12.28.
민족사진가협회에서 시골 할매와 할배를 찾아다니면서 영정사진을 찍어 주었다고 합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몹시 반겼다고 해요. 이때에 민족사진가협회 사람들은 영정사진만 찍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할매와 할배한테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매와 할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할매와 할배가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으며, 할매와 할배가 이녁 딸아들한테는 들려주지 못하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살포시 묶어 《사람과 이야기》(현자,2006)라는 사진책이 태어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시골 할매나 할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가 없습니다. 시골 할매나 할배하고 함께 살면서 이녁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딸아들이 없습니다. 아이(손자 손녀)를 데리고 시골집 할매와 할배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딸아들은 있지만, 막상 시골집 할매와 할배가 어떤 삶을 일구었는지 찬찬히 들으면서 생각을 밝히려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할매와 할배는 시골에도 도시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도 할매와 할배는 참으로 외롭거나 쓸쓸합니다. 이녁 이야기를 들어 주는 젊은이가 몹시 드뭅니다. 할매와 할배하고 함께 살면서 이야기꽃을 도란도란 피우는 젊은이를 보기란 매우 힘듭니다.
예부터 ‘늙은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삶을 누린 발자국’을 슬기로 삭혀서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예부터 ‘늙은이’는 이야기를 지어 젊은이와 아이한테 차곡차곡 남겼어요.
어린이·젊은이·늙은이,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빛이 되면서 삶을 짓습니다. 어린 꿈과 젊은 꿈과 늙은 꿈은 한자리에서 밝게 빛났습니다.
사진책 《사람과 이야기》 첫머리에는 예전에 민족사진가협회 대표였던 김영수 님이 쓴 머리말이 있습니다. 김영수 님은 지난 2011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애틋하면서 아련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김영수 님은 할매와 할배 영정사진을 찍어 주셨는데, 막상 이녁 영정사진은 찍었을까요. 이녁 영정사진은 다른 사진가들이 찍어 놓았을까요.
김영수 님은 책 첫머리에서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운 그동안의 정책들이 지역의 인구 노령화 및 도시와 크게 차이 나는 소득격차 결과를 가지면서 오랫동안 지속한 우리네 공동체 문화를 붕괴하고 개인주의를 급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다 함께 모여 정담을 나누는 모습도 이웃 간의 정도 만나기 쉽지 않았고, 제각기 다른 삶과 가치관 형태는 가족과 이웃의 일차적인 소통마저 차단하면서 사람이 나누어야 할 기본적인 정조차 소원하게 만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머리말).”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는 박정희 군부독재가 일으킨 새마을운동을 내세워서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였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착하게 살던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모아서 공장 일꾼으로 부려요. 공장에서 아주 값싼 일삯을 주면서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을 목청껏 외칩니다.
이동안 시골사람은 엄청나게 짓눌립니다. 시골에서 거둔 곡식을 정부(농협)에서 아주 눅은 값으로 사들여요. 시골에서 시골사람이 거둔 곡식을 정부(농협)가 아니면 거둘 수 없게끔 길을 가로막아요. 이러면서 정부가 한 일은 ‘외국 곡식 사들이기’입니다. 한국 시골에서 거둔 곡식을 헐값으로 사들일 뿐 아니라, 외국에서 곡식을 더 값싸게 사들여서 이 나라 시골마을이 옴팡 무너지도록 부추깁니다.
도시에서 ‘곡식을 사서 먹는’ 사람은 어떤 곡식을 사서 먹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이 식량자급률이 얼마나 낮은가를 깨닫거나 느끼는 도시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요즈막(2013년)은 식량자급률이 23퍼센트라고 하는데, 그나마 이 숫자는 ‘쌀 자급률’ 때문입니다. 쌀을 빼면 식량자급률은 10퍼센트조차 안 되리라 느껴요. 게다가 쌀 자급률도 100퍼센트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거둔 곡식으로 한국사람이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중앙정부와 지역정부는 고속도로를 새로 늘리고 아파트를 새로 지으며 도시를 더 키우려 합니다. 골프장과 공장과 발전소와 송전탑을 자꾸 늘리기만 합니다. 식량자급률은 끝없이 떨어지는데, 스스로 먹고살 길을 마련하려 하지 않아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시골지기(농사꾼)가 될 마음이 없고, 시골학교에서 시골아이한테 시골사람 되도록 가르치는 제도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를 시골지기로 가르치거나 이끄는 제도는 더더욱 없습니다.
도시에서 문화나 예술로 사진을 찍던 이들이 시골로 영정사진을 찍는 ‘봉사’를 한다면서 찾아갈 적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도시에서 모처럼 찾아온 사진가들한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 궁금합니다.
영정사진을 찍을 적에는 가장 고운 옷을 차려서 입는다고 하는데, ‘가장 고운 옷’이란 무엇일까요. 양복일까요? 한복일까요?
들에서 일하며 입는 일옷 차림새로 영정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까요? 손과 얼굴에 흙이 묻은 모양새로 영정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까요? 시골사람이 시골사람답게 시골빛으로 웃고 우는 삶자락을 고스란히 담는 ‘영정사진’과 ‘삶사진’과 ‘사진’을 빚을 수는 없을까요?
다른 곳 사진가가 아닌 민족사진가협회 사진가라 한다면, 사진기를 목에 걸고 논에 들어가서 함께 손으로 모를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고 숲과 들에서 함께 나물을 캐거나 뜯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사진기를 목에 걸고 숲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나뭇단을 짊어지고 오르내릴 수 있기를 빕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고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기를 빕니다.
여느 수수한 삶으로 더 깊고 넓게 스며들 때에 ‘이야기와 사진’이 새롭게 태어나리라 느낍니다. 여느 투박한 삶을 사랑하고 아낄 때에 ‘이야기와 사람’이 새롭게 보이리라 느낍니다. 여느 고운 삶을 마주하며 바라볼 때에 ‘이야기와 삶’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드러나리라 느낍니다.
여러 시골마을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뭉뚱그려서 한 권으로 엮었는데, 마을마다 삶과 사람과 빛과 사랑이 다른 만큼, 마을마다 따로 사진책 한 권이 되도록 꾸준하게 《사람과 이야기》를 선보였다면 훨씬 돋보일 만하리라 생각해요. 앞으로는 ‘영정사진 봉사’보다는 ‘이야기동무 나눔’으로, ‘이야기벗 나들이’로 시골 할매와 할배를 만나서 사진삶을 보여준다면 더 좋겠습니다. 사람한테서 나오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는 즐거움을 보여주기를 빌어요.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