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4.7 - Vol.8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78



사진은 누구 곁에 있는가

― 사진잡지 《포토닷》 8호

 포토닷 펴냄, 2014.7.1.



  작은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 곁님은 옆방에서 따로 잡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시골집은 방이 작기도 하지만, 곁님은 스스로 삶을 새로 빛내려고 날마다 바지런히 공부를 합니다. 홀로 조용히 공부를 하려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때에 즐겁게 기운을 냅니다. 나는 늘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잠들고, 아이들이 느긋하면서 아늑하게 꿈나라를 누비기를 바라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지낸 지 어느새 세 해째요, 아이들은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재우는 저녁빛이 익숙합니다. 아이들도 어머니가 몸과 마음을 살리려는 공부를 하는 줄 알기에, 기꺼이 아버지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가끔 어머니가 좁고 작은 방에서 함께 잡니다. 이럴 때에는 그야말로 다닥다닥 붙어서 잡니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좁고 작은 방에서 더 많은 식구가 지냈으니, 지난날을 헤아린다면 우리 집은 그리 좁거나 작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네 식구가 모처럼 작은 집에서 다닥다닥 잠자리에 들면, 큰아이는 부러 벽에 착 붙어서 자려고 해요.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느긋하게 다리를 뻗고 자도록 마음을 씁니다.


  일곱 살 큰아이가 어쩜 이렇게 마음을 쓰는가 하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짠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가슴을 토닥토닥 해 줍니다. 볼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예쁜 아이 고운 아이 착한 아이 같은 말을 나즈막하게 속삭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어버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늘 새롭게 깨닫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8호를 읽습니다. 사진잡지 사진잡지 《포토닷》은 2014년 7월을 앞두고 씩씩하게 여덟째 책을 선보입니다. 여덟째 책에서는 여러모로 눈여겨볼 이야기가 흐릅니다. 먼저, 폐차장에서 찌그러진 자동차를 사진으로 찍는 분 이야기를 읽습니다. “윤승준(59)은 폐차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장면들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자동차마니아인 그에게 폐차장의 발견은 201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 난민을 촬영하기 위해 들른 요르단에서 마치 광활한 무덤과 같은 거대 폐차장을 발견했다(33쪽/김소윤).” 윤승준 님으로서는 자동차입니다. 윤승준 님이 바라보는 자동차는,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 찍는 꽃 사진하고 똑같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어버이로서 내가 늘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하고 같다고 할 만해요.





  우리는 늘 곁에 있는 누군가를 사진으로 찍어요. 곁에 없는 사람을 찍을 수 없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찍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찍는 사진이기에, ‘곁에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이곳저곳 떠돌기 마련이에요.


  먼 나라로 취재를 다니는 분들도 먼 나라에서 ‘곁에서 마주할 이웃’을 만나고 싶으니 찾아다닙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내 곁에 있어’야 사진으로 찍어요. 곁에 두고 마음으로 사귀고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세계에 대한 개인적인 시선이 무의미해진 지금 미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더욱더 개인적이 되거나 개인적인 시각을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영상적 시각과 최대한 충돌시키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50쪽/강홍구).”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요. 요즈음은 참말 ‘미술가’이면서 ‘사진밭’에 발을 담그려는 이들이 자주 보입니다. 또한, ‘사진가’이면서 ‘미술밭’에 발을 담그려는 이들이 곧잘 보여요.


  왜 그럴까요. ‘교류’를 하고 싶기 때문일까요? 울타리를 허물고 싶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까요? 곁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탓에 이곳저곳을 떠돌거나 헤매는 셈일까요?


  사진은 사진으로 보여줄 때에 사진입니다. 그림은 그림으로 보여줄 때에 그림입니다. 예술은 예술로 보여줄 때에 예술입니다. 저마다 서는 자리가 다르지요. 저마다 빛나는 숨결이나 무늬가 달라요. 스스로 ‘사진가’이고 싶다면 사진으로 이야기를 해야 마땅하고, 스스로 ‘미술가’나 ‘예술가’이고 싶다면 미술이나 예술로 이야기를 해야 아름답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반 고흐 같은 분은 ‘그림쟁이(미술가)’입니다. 반 고흐 같은 분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그림을 사랑해서 그림으로 삶꽃을 피운 분입니다.





  “나에게 한 사진가는 안셀 아담스와 같이 항상 같은 범위 안에서 이미지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조언해 주었다. 만약 내가 밝은 이미지 톤을 원하면 그냥 그렇게 원하는 대로 찍으면 된다는 생각을 던져 주었다(60쪽/피터 스타인하우어).”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입니다. 안셀 아담스는 안셀 아담스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사진을 찍어요. 안셀 아담스가 내 흉내를 낼 까닭이 없고, 내가 안셀 아담스 흉내를 낼 까닭이 없습니다. 안셀 아담스는 언제나 안셀 아담스답게 곁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피터 스타인하우어라는 분은 늘 피어 스타인하우어라는 이녁 넋 그대로 곁을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찍을 때에 환하게 빛납니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가정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오래된 가구들이 많은데,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가구들을 보는 것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고가구에는 수집가의 역사까지도 담겨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69쪽/줄리앙 스피와크).”와 같은 이야기를 잘 살필 수 있어야 해요.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야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는 남이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진학과에서 사진감(사진 주제)을 캐내어 베풀지 않습니다. 사진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진공모에서 1등을 받았다고 해서 어떤 사진을 즐겁게 찍거나 잘 찍거나 훌륭하게 찍을 수 있지 않아요.


  “사진비평은 사진작품을 말하는 것이지만, 실은 작품을 매개로 비평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평론가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글은 오래 가지 못한다(85쪽/최원호).”와 같은 이야기를 새길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비평은 비평을 하는 사람이 이녁 삶을 드러내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입니다. 사진창작은 무엇이겠어요? 작품 만들기가 창작이 될 수 없어요. ‘작품 만들기’가 아니라 ‘작품을 빌어’ 우리 이야기를 스스로 빚어서 보여줄 때에 비로소 사진창작, 곧 사진찍기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내려 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다면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삶을 날마다 맞이하면서 생각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가 감돌지 않는다면 사진도 창작도 아무것도 안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이들 누구나 “본다는 문제는 내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왜 남극을 보고 감동을 받을까(97쪽/임상빈)?”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서로 기쁘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사진은 내 감정에서 나온다. 내가 내 사진에서 찾는 것은 질리지 않는 것이다(115쪽/우창원).”와 같은 이야기처럼, 스스로 내 삶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즐거워요. 스스로 즐거운 사진일 때에 질리지 않아요.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먹는 밥은 늘 맛있어요. 늘 맛있는 밥은 질리지 않습니다.


  사진은 어느 먼 별나라나 달나라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태어나는 사진입니다. 삶을 사랑할 때에 사진이요, 삶을 꿈꿀 때에 사진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나다니며 보는 모든 것이 마치 그림이 될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143쪽/김주원).”와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합니다. 스스로 삶을 그리고, 스스로 삶을 노래할 때에 사진입니다.


  사진은 누구 곁에 있는가요? 바로 내 곁에 있습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요? 바로 내 옆에 있습니다. 사진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요? 바로 내 손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역사나 사진문화는 무엇인가요? 내가 날마다 일구는 삶이 바로 역사이면서 문화입니다.


  “소한테 먹일 풀을 베거나 깊은 멧골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예전에는 드물었고, 오늘날에는 찍을 수 없습니다. 참말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한겨레 삶을 보여주는 사진이란, 우리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진이란, 들과 숲하고 어깨동무하던 수많은 사람들 빛과 숨결을 보여주는 사진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 연필과 종이가 없던 사람은 모든 이야기를 머리에 담았습니다. 책이 없던 사람은 모든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사진기가 없던 사람은 모든 꿈과 사랑을 마음에 담았습니다(153쪽/최종규).”와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사진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고, 사진기가 없어도 사진을 찍습니다. 디지털파일이나 필름에 담아도 사진이고, 가슴이나 마음에 담아도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없이 디지털파일이나 필름만 잔뜩 만들면 사진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있으면, 흔들려도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초점이 어긋나도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사랑스러우니,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4347.6.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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