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04) 시작 45 : 새로 시작하자

산예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 물에서 나온 지 오래되어서 힘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 “그래, 새로 시작하자. 오늘부터 다시 백일기도를 드리자.”
《배유안-분황사 우물에는 용이 산다》(파란자전거,2010) 55, 94, 109쪽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 천천히 이야기를 했어요
→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어요
 힘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 힘이 달려요
→ 힘이 달리려고 해요
→ 힘이 조금씩 달려요
 새로 시작하자
→ 새로 하자
→ 새로 해 보자
→ 처음부터 새로 하자
 …


  한자말 ‘시작’은 어느 자리에서나 군더더기이기 일쑤입니다. 이 낱말은 아예 안 넣어야 글흐름이 매끄럽습니다. 또는, 다른 낱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이야기를 처음 꺼낸다고 하면 ‘처음 꺼낸다’고 하면 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면 ‘들려준다’고 하면 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천천히 이야기했어요”라 적을 수 있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어요”라 적을 만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한자말 ‘시작’을 도움움직씨처럼 쓴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그러나 잘 헤아려 보셔요. ‘시작’이라는 한자말을 한국사람이 쓴 지는 아직 백 해조차 안 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한자말을 쓰던 한국사람이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더 많은 한자말을 집어넣을 수 있어야 글멋이 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알맞게 다스리면 됩니다. 한자말을 알아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아요. 4347.6.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산예가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 물에서 나온 지 오래되어서 힘이 달립니다 … “그래, 새로 하자. 오늘부터 다시 백 날 동안 비손을 드리자.”

‘기도(祈禱)’라든지 ‘백일기도(百日祈禱)’ 같은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 궁금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두 손을 모아 어떤 일을 바랄 적에 ‘비손하다’라는 낱말을 썼습니다. 백 날에 걸쳐서 마음을 모아서 바랄 적에도 ‘비손하다’라는 낱말을 썼겠지요. 이 보기글은 백제 무렵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이러한 바탕과 흐름을 살핀다면, ‘백일기도’라는 낱말은 ‘백날 비손’이라든지 “백 날 동안 비손을 드리자”로 손질해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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