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동화
어린이문학상을 받았다는 작품을 읽다가, 요즈음 여러모로 널리 사랑받는다는 작품을 읽다가, 히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에서는 한숨 소리를 ‘휴’로 적습니다. 꽤 잘 팔리고 많이 읽히는 동화를 쓴다는 ㅂ이라는 분은 국어교사라 하는데, 이분은 ‘휴’가 일본말인 줄 느끼지 않습니다. 한숨 소리를 한국말로 옳게 적으려면 ‘후유’나 ‘히유’입니다. 동화를 쓰는 국어교사는 ‘微笑’ 같은 일본 한자말을 곧잘 쓰고, ‘急하다’라든지 ‘救하다’ 같은 한자말도 꽤 즐겨씁니다. 한국말로 ‘서두르다’라든지 ‘살리다’를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조선이라든지 백제라든지 옛날을 발판으로 삼아 이야기꽃을 펼치려 하지만, 정작 그무렵 아이와 어른이 어떤 말로 삶을 밝히려 했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요샛말로 어린이문학을 하면서도 한국말에 밝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은 그냥 문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른문학도 이와 같아요. 문학은 문학으로 그치는 일이 없습니다. 문학은 늘 ‘말’로 짓습니다. 말로 짓는 문학이기에, 문학을 읽는 사람은 늘 ‘말을 배웁’니다. 문학이라는 틀로 담은 ‘말’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누리고 말을 새롭게 익혀요.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마땅히 ‘말을 말답게 가눌’ 줄 알아야 하며, 한국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은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어린이문학을 한다면 말을 훨씬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글솜씨가 있기에 문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학은 솜씨자랑이 아니거든요. 글재주가 있대서 문학을 잘 하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하게도, 문학은 재주잔치가 아니니까요.
문학은 말꽃이면서 이야기꽃입니다. 말이 곱게 피어나는 꽃처럼 되도록 가꿀 문학입니다. 이야기가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처럼 되게끔 돌볼 문학입니다. 이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어린이문학으로서 어떤 값어치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모든 문학은 우리를 가르칩니다. 어른문학이건 어린이문학이건 늘 가르침(교훈)을 담습니다. ‘교육 효과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문학이건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삶을 읽는 사람(독자)은 이웃을 느끼고 나 스스로를 톺아볼 수 있습니다. ‘문학을 읽으면서 삶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다만, ㅂ이라는 작가 한 사람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들이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거나 살피거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문학을 하는 분들은 더더욱 한국말을 제대로 안 배우거나 제대로 안 살피거나 제대로 안 바라봅니다. 그러면, 문학은 어떤 빛이 될까요. 말빛이 없는 문학이라면, 말꽃으로 피어나지 못하는 문학이라면, 이런 문학은 우리 삶에 어떤 빛이 될 만한가요. 4347.6.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