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꼬리풀 책읽기 (까치수염·까치수영)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적마다 여름철에 으레 보던 예쁜 풀꽃이 있다. 꽃이 필 무렵 꽃대가 곧게 오르다가는 올망졸망 달린 꽃망울 무게에 살그마니 고개를 숙여, 마치 꼬리마냥, 개 꼬리나 고양이 꼬리마냥 살며시 늘어진 뒤, 꽃대 쪽부터 꽃이 하나둘 피면서 활짝 맺히는 풀꽃이다. 여러 해에 걸쳐 여름철마다 이 들꽃을 보며 참 곱네 하고 생각했을 뿐, 사진으로 찍지도 않고 누구한테 이름을 묻지도 못했다.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만나니 물어 볼 사람이 없기도 했다.


  여러 해만에 이 풀꽃 이름을 이웃한테 여쭈어 비로소 궁금함을 푼다. ‘까치수염’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까치수영’을 쓰기도 한단다. 왜 이렇게 이름이 갈릴까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더 알아본다. ‘까치수염’이라는 이름은 한국 풀학자가 1937년에 처음으로 책에 적었다고 한다. 학문이름이라는 뜻이다. 북녘에서는 이 풀꽃을 가리켜 ‘꽃꼬리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개꼬리풀’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단다.


  ‘수염(鬚髥)’은 한자말이다. 턱이나 뺨에 나는 털을 가리키는 한국말은 ‘나룻’이다. 그렇지만, ‘옥수수수염’처럼 말하지 ‘옥수수나룻’이라 말하는 사람은 못 보았다. 곰곰이 더 생각해 본다. 한자가 한겨레 삶에 스며든 지는 얼마 안 된다. 권력자는 한자를 썼다 하지만,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을 이루던 시골에서는 한자를 쓰지도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않았다. 그러니, ‘수염’이라는 낱말도 한겨레가 널리 쓴 지는 얼마 안 되었다고 보아야 옳다. 이를테면, 1700년대라든지 1400년대라든지 900년대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들이 ‘수염’이라는 낱말을 썼을 턱이 없다. 백제나 가야 적에 ‘수염’ 같은 낱말을 썼을까?


  그러면, ‘까치수염’이라는 풀은 ‘까치나룻’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켜야 올바르다고 할 만할까. 그러면, 왜 ‘까치-’라는 이름이 앞에 붙을까.


  북녘에서는 왜 ‘꽃꼬리풀’이라는 이름을 쓸까. 아무래도 꽃이 달린 꼬리 모양 풀이니까 이런 이름을 쓴다고 할 만하다. ‘개꼬리풀’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참말 이 풀에서 꽃이 올망졸망 돋는 모습을 보면 ‘꽃꼬리’나 ‘개꼬리’라는 이름이 확 와닿는다.


  아이들과 우체국에 마실을 가려고 자전거를 몰면 또 이 풀을 볼 텐데,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알려주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어떤 이름을 들으면서 마음자리에 빛을 한 줄기 품을 만할까 곱씹어 본다. 아이들은 어떤 이름을 곧장 알아채거나 느끼면서 다음에는 스스로 풀빛과 풀이름을 알아볼 수 있을까.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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