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상엽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77



사진을 밝히는 재미

―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상엽 글·사진

 이른아침 펴냄, 2008.11.29.



  찍어야 할 삶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하는 이상엽 님이 선보였던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이른아침,2008)을 읽습니다. 이상엽 님은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상엽 님은 이때에 “하나같이 아름답고 재기발랄한 사진들입니다. 하지만 그 온전한 형식보다 뭔가 부족한 내용에 마음이 걸렸습니다(7쪽).” 하고 느꼈다고 해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온전한 형식”이지만 “부족한 내용”이 있다고 느꼈을까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빈틈없이 틀을 맞추거나 만들 때에는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니, 빈틈없이 틀을 맞추거나 만들 때에는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지는 않을까요.


  속에 담은 이야기가 없다면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니, 속에 담은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못 쓰지 않나 싶어요. 사진이 아닌 그림도 이와 같거든요. 붓놀림이 대단하다기에 그림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화가가 그렸대서 그림이라 하지 않아요. 속에 담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그림입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노래입니다. 속에 담은 이야기가 춤출 때에 글입니다.


  이상엽 님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에서 “남의 사진을 인정해야 내 사진도 인정받는다(15쪽).” 하고 말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읽을’ 수 있어야, 내 사진을 나 스스로 ‘읽을’ 뿐 아니라,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읽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나 스스로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느껴요.


  사진은 남한테서 ‘인정을 받으려’고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나 스스로 ‘읽’고, 내 이웃하고 함께 ‘읽’고 싶어서 찍습니다. 읽히려는 뜻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나누려는 뜻에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속에 이야기를 담으면서 제대로 읽히도록 하자면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이상엽 님은 “틈날 때마다 그 장면을 연상하고, 어떻게 찍을지 고민한다(17쪽).” 하고 말합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늘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리기에, 눈앞에서 ‘내가 마음으로 그린 모습’을 마주했을 때에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찰칵 하고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합니다. ‘글을 쓰’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때에 비로소 ‘사랑을 하’거나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속에 삶을 그려야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는 삶이 없으면 스스로 삶을 짓지 못해요.


  사진과 삶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사진과 삶은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안하다’, ‘아름답다’ 등의 느낌은 사진이 단순했을 때 가장 빠르게 파악된다(27쪽).”와 같은 말처럼, 삶에서 우리가 느긋하거나 넉넉하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느낄 때를 헤아리면 사진을 잘 알 수 있어요. 우리 삶은 언제 사랑스러운가요? 우리 삶은 언제 넉넉한가요? 우리 삶은 언제 사랑스러운가요? 삶을 가만히 살필 때에 사진을 환하게 알아챕니다. 이론을 배워야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알아야 찍는 사진입니다. 지식을 익혀야 잘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할 때에 사랑스럽게 찍는 사진입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사진을 빛냅니다. 이리하여, “나는 사진이 자연 환경의 파괴를 막는 도구가 되길 원한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31쪽).”처럼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삶을 밝히는 새로운 빛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아무런 새 빛을 빚지 못해요.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총칼을 앞세워 전쟁을 일삼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주먹질과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온갖 따돌림과 푸대접 따위로 사회를 비트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들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이들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요? 이들이 찍은 것은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베이징을 짧게 보고 가는 외국인들에게는 자금성과 천안문만 보이겠지만 진정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적 풍취를 느끼고 싶다면 후통을 들러 볼 일이다(7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스치는 사람은 스칠 뿐입니다. 머무는 사람은 머물 뿐입니다. 바라보려는 사람은 바라봅니다. 느끼려는 사람은 느낍니다.


  천안문은 무엇일까요? 천안문은 천안문일 뿐입니다. 천안문은 중국 역사가 아니라, 그저 천안문입니다. 그러면 중국 역사는 무엇일까요? 중국 역사는 중국에서 이루어진 삶입니다. 중국에서 이루어진 삶을 보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스스로 생각을 기울일 때에 실마리를 쉽게 찾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때에 실마리를 바로 찾습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은 무엇일까요? 경복궁은 무엇일까요? 조선왕조실록은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이 한국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아니지요. 남대문은 남대문이고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도 아니고 문화도 아닙니다. 그저 이런 것들일 뿐입니다. 한국 역사란 한국에서 이루어진 삶입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삶이란 무엇일까요? 정치권력자 이름은 삶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자가 전쟁무기를 만들어 벌인 땅뺏기는 삶이 아니요 역사도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구면서 가꾼 하루가 삶이요, 이러한 삶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책에 없습니다. 역사는 늘 우리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내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내 삶을 읽으면서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엽 님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에서 여러 사진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짤막하게 몇 마디 주고받은 이야기를 곁들여 ‘사진빛’을 보여줍니다. “강재훈의 사진 인생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가 사진을 찍는 것은 마음속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함이지 꼭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진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인이고 그것을 잊어 본 적도 없다(213쪽).”와 같은 이야기는 강재훈이라는 분이 빚는 사진빛을 보여주는 말이면서, 이상엽이라는 분이 스스로 빚는 사진빛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마음으로 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이상엽 님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이상엽 님입니다. 이야기와 돈, 이 두 가지를 늘 돌아보면서 하루를 일구는 이상엽 님입니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은 “지친 몸과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한산한 해변이나 호젓한 숲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드는 건 어떨까? 멋지지 않는가(310쪽)?”와 같은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네, 이 말이 맞습니다. 멋집니다. 바닷가나 숲속에서 읽는 책은 무척 멋집니다. 참말 이렇게 해 보셔요. 바다에 가서 책을 읽어 보셔요. 어마어마하게 잘 읽힙니다. 숲으로 가서 책을 읽어 보셔요. 엄청나게 잘 읽힙니다.


  책에 마음을 쏟아 잘 읽는 분은 서울 한복판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잘 읽습니다. 종로나 압구정동 시끌벅적한 길거리에서도 책을 얼마든지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닷가나 숲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모입니다. 바닷가나 숲에서는 우리 둘레에 있는 바람과 나무와 풀과 흙과 물이 우리 몸을 가볍게 건드리면서 싱그럽게 어루만집니다. 이동안 우리들은 티없는 넋이 될 수 있고, 티없는 넋이 되면서 책에 깃든 이야기를 알뜰히 받아먹을 수 있어요.


  바다나 숲이나 멧골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은 까닭을 알 만해요. 아름다운 바다나 숲이나 멧골에서는 나 스스로 그야말로 ‘나다움’, 곧 ‘사람다움’, 그러니까 ‘빛다움’을 깨닫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는 재미를 맛봅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가요? 그러면 숲으로 가셔요. 숲에 가서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인 뒤 사진으로 찍어 보셔요. 그리고, 숲을 떠나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서는, 내 보금자리 둘레에서 내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두근거리게 하는 아름다운 것을 살펴보셔요. 아름다운 것을 느낄 때에 이야기가 자라고, 이야기가 자랄 때에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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