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을 든 사람은 이웃을 괴롭히거나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총칼을 든 사람은 언제나 이녁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셈이다. 총칼은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총칼은 사랑을 부르지 못한다. 총칼은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 총칼은 오로지 전쟁과 죽음과 미움과 노예를 부른다. 이와 달리, 나무를 쓰다듬는 사람은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한다. 나무를 쓰다듬다가 심는 사람은, 나무를 돌보면서 씨앗을 받고 어린나무를 가꾸면서 숲을 일구는 사람은, 언제나 이녁 스스로를 돌보면서 사랑한다. 나무는 모든 것을 낳는다. 나무는 사랑을 부른다. 나무는 평화를 지킨다. 나무는 한결같이 사랑과 평화와 꿈과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조선의 소반·조선도자명고》를 쓴 일본사람 아사카와 다쿠미 님은 나무를 보듬은 넋이다. 나무를 보듬으면서 ‘식민지 조선’을 ‘식민지’가 아닌 ‘아름다운 숲’으로 느끼면서 얼싸안은 숨결이다. 이 나라 시골에서 수수한 여느 사람들 누구나 ‘밥상’을 아끼면서 건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밥상 하나’에 얽힌 아름다움을 느꼈고, 밥상마다 스민 아름다움을 가만히 읽으면서 한겨레가 오랜 나날 이룬 빛과 노래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아사카와 다쿠미 님에 앞서, 이 나라 어느 권력자나 학자나 지식인이 ‘밥상에 서린 빛’을 보거나 느끼거나 읽었을까. 그리고, 오늘날까지 어떤 한국 권력자나 학자나 지식인이 ‘밥상에 맺힌 노래’를 듣거나 느끼거나 읽는가. 문화는 궁궐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문화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살림집에서 태어난다. 역사는 궁궐에서 나오지 않는다. 역사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살림집이 깃든 숲에서 자란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