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쓰는 글
일곱 살 큰아이가 글을 잘 익히도록 깎두기공책에 한글을 천천히 쓴다. 내가 먼저 천천히 글을 쓰고, 아이가 내 글씨를 보며 따라서 쓴다. 아이는 아직 글씨쓰기보다는 글씨그리기에 더 가깝다. 비슷한 모양으로 그린다고 해야 옳다. 아이가 글쓰기로 거듭나려면, 한글을 어떻게 쓰는가를 제대로 깨우친 뒤 차근차근 생각을 담을 수 있어야 할 테지.
아이가 쓰는 글은 ‘모양만 잡으려는’ 글이 아니다. 아이가 글씨를 하나씩 찬찬히 살피면서 바르게 쓰도록 이끄는 글일 뿐 아니라, 아이가 마음으로 받아들일 고운 빛이 서린 이야기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름에는 딸기 먹고, 가을에는 떡을 먹고, 겨울에는 무얼 먹고, 봄을 노래하는 하루” 이렇게 넉 줄을 쓴다. 일곱 살 아이가 ‘ㄹ’과 ‘ㄷ’과 ‘ㅁ’을 찬찬히 쓰지 못한다고 느껴, ‘ㄹ’과 ‘ㄷ’과 ‘ㅁ’을 고루 섞어서 글을 짓는다.
아이는 아버지가 그때그때 지은 글을 읽으면서 ‘ㄹ’이든 ‘ㄷ’이든 ‘ㅁ’이든 얼마나 자주 나오는가를 헤아릴 테지. 이런 닿소리를 읽고 쓰면서 차곡차곡 담을 테지. 글씨마다 빛이 깃들기를 바란다. 글씨마다 숨결이 서리기를 빈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