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월드컵을 보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은 세계축구대회라 하는 ‘월드컵’을 보지 않습니다. 지난겨울에 겨울올림픽을 보지 않았으며, 올해에 한국에서 연다는 아시안경기도 보지 않습니다. 이런 운동경기를 보아야 할 까닭이 없고, 이런 운동경기에 마음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뛰놀면서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복닥이면서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놀 때에 즐겁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 놀이를 구경하면서 ‘숫자(기록)’를 따지거나 ‘이기고 지는 흐름’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2014년에 브라질에서 세계축구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유월부터 경기를 치른다 하고, 아마 이주나 다음주에 첫 경기를 할 테지요. 오늘 몇몇 기사를 찾아서 읽으니, 브라질은 2007년부터 축구경기장을 새로 짓고 주차장과 새 찻길을 닦으려고 20만이 넘는 사람들을 길바닥으로 내쫓는 재개발을 했다고 합니다. 이동안 브라질 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끌어들여 사람들을 두들겨패거나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지난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1984년과 1988년을 앞두고 어떤 철거와 재개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죽였는지 돌아봅니다. 1984년에 앞서는 전국체전을 벌인다면서 전국 곳곳에서 끔찍한 철거와 재개발을 해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국내 대회’이든 ‘세계 대회’이든 지구별 모든 나라는 경기장을 짓고 주차장과 찻길과 숙소를 마련한다는 핑계를 내세워서 나라살림을 거덜내는 한편, 부동산투기와 토목건설만 일삼습니다.

  요즈음 브라질에서 집회와 시위를 막고 재개발을 밀어붙이는 데에 들이는 군부대와 경찰 숫자가 20만이라고 합니다. 브라질에서 지난 여덟 해에 걸쳐 20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이녁 보금자리에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어쩜 군부대와 경찰 숫자하고 ‘삶터에서 쫓겨난 사람’ 숫자가 같을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군부대와 경찰을 거느리느라 드는 돈을 고스란히 ‘사람들 삶터를 가꾸고 지키는 데에 쓴다’면 나라가 살고 문화가 살며 복지가 꽃피운다는 뜻입니다. 경기장을 짓고 싶으면 경기장을 짓되, 사람들을 함부로 쫓아내거나 괴롭히지 않아도, 얼마든지 돈이 있을 뿐 아니라,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군부대와 경찰 20만을 여덟 해 동안 거느리는 돈으로 시골에 땅을 마련해서 ‘삶터에서 쫓겨난 20만’이 새 보금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렇지만 브라질 정부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도 예나 이제나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운동경기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이와 같은데, 이런 운동경기를 왜 보아야 할까요. 운동경기를 치른다면서 이웃과 동무를 죽이거나 괴롭히는데, 그저 경기장만 쳐다보거나 방송 화면만 바라보면 될까요. 유월에 논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을 재우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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