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싹을 보다
내가 알기로는 틀림없이 당근싹이다. 당근싹이 돋았다. 곁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보는 밭자락 한쪽에 당근싹이 돋았다고 느낀다. 나도 당근씨를 심어서 키운 적이 있기에, 이 싹은 당근싹이라고 이내 알아챈다. 이와 같은 모습이면서 당근싹 아닌 다른 싹일 수 있을까. 한번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본다. 풀싹은 어떤 모습일는지 가만히 헤아려 본다. 민들레싹과 씀바귀싹은, 부추싹과 질경이싹은, 꽃마리싹과 꽃다지싹은 저마다 어떤 모습일는지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우람한 느티나무가 되기 앞서, 아주 조그마한 느티씨가 떨어져 돋는 느티싹은 어떤 모습일는지 천천히 그림으로 그린다.
사람들은 ‘밥’이라기보다 ‘먹이’로 삼으려고 씨앗을 심어서 기르곤 한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 나눌 밥으로 풀포기를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많은 ‘영양소’와 더 나은 ‘돈벌이’가 되기를 빌면서 씨앗을 심어서 기르곤 한다.
밥은 어떻게 지어야 맛있을까? 손쉽게 짓는 밥이 맛있을까?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 맛있을까? 즐겁게 노래하면서 짓는 밥이 맛있을까? 전화를 걸어 시켜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 어떤 밥이든 함께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
당근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온갖 생각과 이야기가 줄줄줄 흐른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