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바깥마실을 마치고 나서 시외버스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마실길 내내 고단하다는 느낌은 없었으나 갑자기 졸음이 쏟아집니다. 쉼터에 닿는다는 안내말씀을 얼결에 듣고는 부랴부랴 눈을 뜹니다. 곁님과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진 채 못 일어납니다. 전철에서 내 무릎에 누워 자던 큰아이는 말똥말똥 내 무릎을 베고 누워 혼자 노는군요.  큰아이한테 신을 신으라 이르고는 오줌 누러 버스에서 내립니다. 아이 손을 잡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 번호를 살펴봅니다. 이러고 나서 앞을 보려는데 뒤쪽에서 누가 빵빵거립니다. 하얀 자가용이 우리더러 길을 비키랍니다.

  나는 길을 비키지 않습니다. 다시 앞을 보고 아이 손을 잡고는 두 걸음 내딛습니다. 아이와 내가 두 걸음 내딛은 뒤 우리 뒤에는 아무도 없고, 하얀 자가용이 지나갈 길은 넓게 트입니다.

  나하고 아이가 이 길을 걸어서 지나가는 데에 아마 삼초쯤 걸렸지 싶습니다. 하얀 자가용은 저 뒤에서 왔을 테니 나와 아이를 보았겠지요. 이 자가용은 왜 고속도로 쉼터에서 삼초를 기다리지 않고서, 아이 손을 잡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한테 빵빵거릴까요.

  삼초를 빨리 가면 얼마나 더 빠를까요. 삼분이나 세 시간을 빨리 가지만, 빨리 가고 나서 어떤 일을 하는가요. 아이는 빵빵거림을 이내 잊습니다. 나는 이 흐름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이와 얘기할 적에 나는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얼마나 귀를 기울이는지, 또 곁님과 얼마나 마음을 쏟아 생각을 주고받는지 되새깁니다.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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