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이웃과 주고받는 말



  찔레꽃이 하얗습니다. 오월로 접어든 시골마을에 찔레꽃이 곳곳에 피어납니다. 오월로 접어들기 앞서 사월 끝자락까지 골짜기나 숲에 등꽃이 알록달록 피었습니다.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가는 길에 으레 등꽃을 보았고, 대문 위쪽으로 등나무 덩쿨이 뻗도록 한 집에서도 곧잘 등꽃을 보았어요.


  찔레꽃은 찔레나무 줄기에서 봉오리를 터뜨립니다. 찔레나무는 들과 숲에서 자랍니다. 예전에는 시골집 울타리로 곧잘 뻗기도 했으나, 이제 찔레나무를 울타리로 삼는 집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삼는 집도, 싸리나무를 울타리로 삼는 집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울타리를 시멘트로벽돌로 쌓습니다. 꽤 예전부터 살던 시골집이라면 돌울타리가 그대로 있으나, 돌울타리는 보기 안 좋다면서 허물어 없애고 시멘트벽돌을 세우는 집이 많아요. 전원주택은 쇠그물로 된 울타리를 세우곤 합니다.


  나무 울타리가 사라지니, 봄이 되어도 온갖 꽃이 흐드러지지 않습니다. 나무 울타리를 세우지 않으니, 달마다 달라지는 꽃빛과 잎빛을 누리지 않습니다. 나무 울타리를 놓지 않기에, 숲정이를 보살피지 않고, 집 안팎에 나무가 자라도록 보듬지 않습니다.


  나무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지만, 날이 갈수록 이 나라에서 나무가 사라집니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 삶은 그예 무너지지만,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관공서에서도 나무를 사랑하는 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교과서로 가르치지만, 정작 나무를 가르치는 일이 없어요. 정치와 경제와 스포츠를 신문·방송에서 날마다 다루지만, 막상 나무를 다루는 일이 없어요.


  오늘 어떤 나무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알리는 신문이나 방송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오늘 어떤 들꽃이 피었구나, 하고 이야기하는 어른이 없어요. 우리는 이웃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하고 어떤 삶을 노래할까요.


  이오덕 님은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라는 책을 선보인 적 있습니다. ‘우리 문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글’을 쓰자는 책입니다. 영어로 된 글이나 일본 한자말로 된 글이나 중국 한자말로 된 글이 아니라, ‘우리 글’로 쓰자는 책입니다.


  “김유정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그 글월들의 길이가 길든지 짧든지 거기 나타난 이야기말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옛이야기말에서 지난때를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고, 이 점에서 김유정의 소설문장은 우리들 이야기말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받았다고 하겠다(107∼108쪽).”와 같은 대목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우리 글, 그러니까 우리 말은 ‘지난때(과거 시제)’를 잘 안 씁니다. 지난때를 쓰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얼마든지 나눕니다. 이와 달리 서양말은 ‘과거·현재·미래’라 하면서, 때를 똑똑히 나누지요. 게다가 서양말에는 ‘현재진행형’도 있어요.


  한국말에는 토씨가 있으나 서양말에는 토씨가 없습니다. 서양말에 없는 토씨인데, 한국말을 서양말로 옮기면 이 ‘토씨’를 어떻게 밝혀야 할까요. 밝힐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토씨를 밝히지 않는 틀로 이야기를 엮어 서양말로 옮깁니다. 거꾸로 생각할 때에도 똑같아요. 한국말에는 관사도 정관사도 없어요. 그러나 서양말에는 이런 관사가 있습니다. 한국말에 없는 관사요 서양말에 있는 관사이지만,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관사 없이’ 얼마든지 이야기를 엮어요.


  한국말에는 ‘그녀’가 없어요. ‘그女’는 일본사람이 서양말을 옮기면서 지은 낱말이고, 이런 낱말을 한국 지식인이 함부로 끌어들였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한국사람은 ‘그녀’ 같은 낱말이 없어도 영어 ‘she’를 얼마든지 한국말로 옮겨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 헤아리면, 전라도 사투리를 영어나 일본말로 어찌 옮기겠어요. 훗카이도 사투리나 웨일즈 사투리를 한국말로 어찌 옮기겠어요. 못 옮깁니다. 그러나, 서로서로 요모조모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빛내면서, 저마다 다른 사투리를 저마다 다른 겨레말로 알맞게 풀거나 옮기지요.


  《우리 문장 쓰기》라는 책은 우리가 학교나 마을이나 집이나 사회나 신문·방송이나 여느 책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제대로 깨닫지 못한 ‘우리 글’을 슬기롭게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이웃과 주고받는 말을 아름답게 가꾸자는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아주 어렵게 설명하는 수사법이란 것을 전혀 모르면서도 어른들이 말하는 그 모든 방법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데, 어른들이 글쓰기를 재주로 익히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노릇인가. 삶과 말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76쪽).”와 같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요. 글솜씨를 부리거나 말재주를 부린다고 해서 글이나 말이 뛰어나지 않아요. 이야기를 담아야 글이 즐겁고 말이 싱그럽습니다. 사랑을 실어야 글이 반갑고 말이 빛납니다.


  어느 아이도 글솜씨를 부리며 글을 안 써요. 그러나 오늘날 입시교육은 논술을 아이들한테 억지로 가르쳐요. 아이들이 글솜씨를 부리도록 내몰아요. 지난날 독재정권과 함께 한때 몰아치던 웅변이란 무엇인가요. 바로 말재주를 부려서 아이들이 바보스러운 몸짓과 우스꽝스러운 소리만 빽빽 지르도록 내몰았어요.


  글은 삶글을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논술이 아닌 삶글을 쓸 우리들입니다. 말은 삶말을 할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웅변이나 연설이 아닌 삶말을 할 우리들입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껏 살려서 나눌 글이요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를 곱게 가꾸거나 일구면서 환하게 웃는 이야기를 어깨동무하듯이 나눌 글이요 말입니다.


  찔레꽃은 찔레꽃빛입니다. 하얗게 맑은 찔레꽃은 찔레꽃빛입니다. 찔레꽃 가까이에 서면 찔레꽃내음이 온몸을 감쌉니다. 환하면서 눈부신 오월이 고이 드러나는 찔레꽃입니다. 찔레꽃이 피면서 논을 갑니다. 찔레꽃내음을 맡으며 논이랑 밭에서 오순도순 일합니다. 찔레꽃이 들과 숲을 포근히 감싸면서 오월이 아름답습니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찬찬히 영그는 복숭아알을 바라봅니다. 매화알도 푸른 빛깔이 이쁘장하게 굵습니다. 낮에는 제비가 하늘을 가르고, 밤에는 소쩍새가 또랑또랑 노래해요. 4347.5.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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