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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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없는 땅에서 무엇이 자랄까

―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1996.4.25.



  아이들이 밥을 먹습니다. 냠냠 짭짭 맛나게 먹습니다. 밥을 다 먹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은 똥이 마렵습니다. 작은 똥걸상에 앉아서 뽀직뽀직 소리를 내며 똥을 눕니다. 아이가 눈 똥이 담긴 똥그릇을 들고 바깥으로 나옵니다. 풀로 우거진 땅을 살펴 아이 똥을 뿌립니다. 아이들 똥은 흙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맞으면서 잘게 부서집니다. 흙은 똥을 품으면서 해마다 새롭게 거듭납니다.


  우리 아이들 똥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 둘레 풀밭에는 온갖 똥이 깃듭니다. 마을을 떠도는 고양이가 누는 똥이 깃듭니다.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살아가는 제비가 누는 똥이 깃들고, 온갖 새가 우리 집을 찾아들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다가 똥을 퐁퐁 눕니다.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다가 곳곳에 떨어진 새똥을 봅니다.


  풀밭에서 살아가는 달팽이가 풀잎을 먹고 풀똥을 눕니다. 풀밭에서 볼볼 기어다니는 애벌레가 풀잎을 먹고는 풀똥을 누어요. 애벌레는 풀잎을 신나게 먹고는 풀똥을 잔뜩 눈 뒤 고치를 틀고는 나비나 불나비로 깨어나요. 풀벌레도 풀밭에서 똥을 눕니다. 개구리도 논에서 놀다가 풀밭에서 쉬면서 똥을 누어요.




..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어요. 골목길 담 밑 구석 쪽이에요. 흰둥이는 조그만 강아지니까 강아지똥이에요 ..  (3쪽)



  마을 어귀 샘터를 보름에 한 차례씩 치웁니다. 지난날에는 마을사람 누구나 샘터에서 물을 길었고, 샘터 앞 빨래터에서 빨래를 했어요. 이제는 집집마다 땅을 파서 물꼭지를 집에서 씁니다. 집집마다 빨래기계를 들여놓습니다. 샘터에서 물을 길을 일이 없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할 일이 없습니다. 물을 안 긷고 빨래를 안 하기에, 샘터와 빨래터에는 물이끼가 잔뜩 낍니다.


  밀솔과 수세미를 챙겨 샘터로 갑니다. 슥슥 삭삭 비벼서 물이끼를 벗깁니다. 마을 샘터에는 다슬기 똥이 소복합니다. 다슬기는 샘터에 낀 물이끼를 먹으면서 잿빛이 감도는 똥을 눕니다. 옛날이라면 샘터도 빨래터도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바닥이나 자갈바닥입니다. 시멘트 바닥에 쌓이는 다슬기 똥은 갈 데가 없습니다. 옛날이라면 다슬기 똥은 흙으로 돌아갔을 테지요.


  흙이 사라집니다. 도시에서는 진작부터 흙이 사라졌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흙이 아닌 인조잔디로 바뀝니다. 도시에 있는 놀이터도 흙을 치웁니다. 도시에서 빈터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작은 빈터가 있으면 주차장으로 삼아요. 빈터에서 아이들이 놀 수 없고, 빈터가 있더라도 아이들은 학원에 가느라 바쁩니다.


  시골에서는 도시 못지않게 흙이 사라집니다. 시골 고샅은 일찌감치 시멘트길이 되었습니다. 시골 논도랑은 하나둘 시멘트도랑으로 바뀝니다. 시골 논둑이나 밭둑도 차근차근 시멘트둑으로 바뀝니다. 시골에 있는 골짜기도 4대강사업을 발판 삼아 시멘트 냇바닥으로 바뀝니다. 온통 시멘트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시멘트만 있습니다.




.. “강아지똥아, 내가 잘못했어. 그만, 울지 마.” 흙덩이가 정답게 강아지똥을 달래었어요. “…….” “정말은 내가 너보다 더 흉측하고 더러울지 몰라.” ..  (8쪽)



  흙이 없는 땅에서 무엇이 자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시골에서까지 흙을 없애면 사람들이 누는 똥오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료와 항생제만 먹고 자라는 돼지와 소가 누는 똥을 거름으로 삼아 ‘유기질’로 시골 논밭에 뿌려 ‘유기농’ 곡식이나 열매로 파는데, ‘사료와 항생제로 이루어진 유기농’은 우리 몸에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좋을는지 궁금해요. 도시사람이 누는 똥오줌은 어떡해야 할까요. 도시에서 건축을 하거나 정치·사회·경제를 이끄는 지식인과 전문가는 도시사람 똥오줌을 어떻게 할 생각일까요. 아니, 지식인과 전문가한테만 짐을 맡길 수 없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과 동무는 우리 똥오줌을 어떡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변기에서 물만 내리면 끝날 일이 될는지요.




..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 주시기 때문이야.” ..  (21쪽)



  권정생 님이 쓴 동화 가운데 짤막한 이야기 하나로 빚은 그림책 《강아지똥》(길벗어린이,1996)을 읽습니다. 강아지가 눈 똥이기에 강아지똥이고, 강아지는 어디에라도 똥을 누기에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개똥입니다. 흔하디흔한 똥입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똥입니다. 흔하게 누는 똥은 흔하게 자라는 풀밭에 깃들고, 흔하게 자라는 풀밭은 강아지동을 고이 품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여느 풀을 ‘잡초’라 일컫지만, ‘잡초’라는 일본 한자말 이름으로 된 풀은 없습니다. 풀은 그저 풀이고, 들에서 돋는 풀은 ‘들풀’이에요.


  풀이 돋기에 흙이 싱그럽습니다. 풀이 있기에 비가 오더라도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풀이 돋아 흙이 싱그러운 곳에 나무씨가 떨어지면 나무가 우람하게 자랍니다. 풀이 있어 빗물에도 흙이 쓸리지 않기에, 나무는 더욱 튼튼하게 숲을 이룹니다. 풀이 돋지 않은 곳은 비가 오면 흙이 쓸리면서 무너져요. 산사태가 나는 까닭은 풀이 없고 나무가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큰물이 지는 까닭도 풀과 나무를 아끼거나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강아지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  (26쪽)



  흙이 있는 땅에서 모든 목숨이 살아납니다. 풀이 자라는 땅에서 모든 숨결이 푸릅니다. 흙과 풀이 싱그러운 곳에서 사람이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사람이 아름답게 살아가며 이웃을 아끼는 밑바탕은 흙과 풀입니다. 흙과 풀은 바람과 해와 빗물을 사랑하며 자라고, 사람 또한 바람과 해와 빗물을 좋아하면서 함께 웃어요.


  꽃은 맑게 핍니다. 사랑꽃도 웃음꽃도 맑게 핍니다. 꽃은 고소한 똥을 받아서 맑게 핍니다. 사랑꽃과 웃음꽃은 향긋한 이야기밥을 받아 맑게 핍니다. 강아지똥 한 덩이에서 빛을 찾고, 우리가 이루는 조그마한 집살림과 마을살림에서 이야기를 일굽니다.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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