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6) 존재 65 : 학무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조선총독부 내에 학무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맞춤법 통일안은 조선어학회의 이름으로 제안되었고
《최경봉-우리 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92쪽
학무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 학무국이 있었으나
→ 학무국이 있기는 했으나
→ 학무국이 버젓이 있었으나
→ 학무국이라는 곳이 있었으나
…
이 자리에서는 군더더기인 ‘존재하고’입니다. ‘존재하고’를 덜어 “학무국이 있었으나”라고 적으면 넉넉합니다. 어쩌면, ‘있었으나’ 앞에 ‘존재하고’를 넣으니 힘있게 말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모르는데, 이와 같이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면, “학무국이 버젓이 있었으나”나 “학무국이 틀림없이 있었으나”나 “학무국이 어엿하게 있었으나”처럼 다른 꾸밈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넣어야 할 말은 넣어야 하나 털어야 할 말은 털어야 하는 줄 알면 좋겠습니다. 꾸밀 말은 어떻게 꾸미고 북돋울 말은 어떻게 북돋아야 하는가를 찬찬히 살필 줄 안다면 좋겠습니다.
한국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가꾸며, 어떻게 어깨동무하면서 아름다운 마음과 넋과 생각을 나누면 흐뭇할까를 곰곰이 헤아리는 말밭과 글밭을 힘껏 일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1.6.8.해.처음 씀/4342.5.17.해.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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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에 학무국이 있었으나 맞춤법 통일안은 조선어학회 이름으로 내놓았고
“조선총독부 내(內)에”는 “조선총독부에”로 손봅니다. “조선어학회의 이름으로”는 “조선어학회 이름으로”로 손질하고, ‘제안(提案)되었고’는 ‘나왔고’나 ‘내놓았고’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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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1) 존재 63 : 고마운 존재, 책
내 20대의 문학청년 시절에 계간지 《문학과 지성》은 문학과 삶을 보는 눈을 키워 준 고마운 존재이다
《장석주-가을》(백성,1991) 128쪽
고마운 존재이다
→ 고마운 책이다
→ 고마운 잡지이다
→ (어떻게 해 주어) 고맙다
…
목숨이 깃든 누군가를 가리킬 때에도 쓰는 ‘존재’이고, 목숨이 깃들지 않은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에도 쓰는 ‘존재’로구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서양말에서 대이름씨처럼 쓰이는 ‘존재’라고도 할 텐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쓰던 말이 있었다고 느낍니다.
고마운 벗 . 고마운 동무
고마운 길동무 . 고마운 길잡이 . 고마운 길벗
고마운 스승 . 고마운 이슬떨이
고마운 님
…
책은 우리한테 벗이나 동무이곤 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일깨우는 스승입니다. 때때로 우리한테 반갑고 살뜰하면서 그립거나 애틋한 님이기도 합니다. 꾸준하게 우리 앞길을 보여주는 길잡이요, 힘겨울 때마다 따순 손길을 내미는 길동무나 길벗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글쓴이는 이 모두를 담아내고 싶어 ‘존재’라는 낱말을 넣었을까요. 벗이며 길잡이인데다가 스승이며 님이라 할 때에는 ‘존재’라 해야 어울린다고 느끼며 이와 같이 적었을까요.
한자말에 익숙한 분한테는 ‘존재’라는 낱말이 여러모로 쓸모가 많습니다. 쓰임새가 많고 느낌이 남다릅니다. 학문을 하거나 지식을 다루는 낱말이 거의 모두 일본 한자말로 이루어지고 만 이 나라 삶터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낱말보다 ‘존재’가 걸맞거나 알맞다고 느끼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학교교육이나 사회문화나 정치경제를 이루는 낱말 또한 한국말로는 짜지 않고 거의 모두 한자말로 짜다 보니, 우리 스스로 ‘존재’가 한결 익숙하면서 살갑다고 느끼지 싶습니다.
그래도 이 보기글을 살피면 “문학과 삶을 보는 눈”이라 말합니다. “문학과 人生을 觀照하는 眼目”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한자말 ‘존재’ 하나는 드러나지만, 다른 자리에서는 하나하나 떨구어 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 한국말로 학문을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문학을 하거나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이제부터 하나하나 가다듬거나 차근차근 헤아리면서 조금씩 익숙하게 쓸 수 있는 ‘있다’입니다. 4341.5.20.불.처음 씀/4342.5.7.나무.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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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물 언저리 문학청년 때에 계간지 《문학과 지성》은 문학과 삶을 보는 눈을 키워 준 고마운 잡지이다
“내 20대의 문학청년 시절(時節)에”는 “내 20대 문학청년 때에”나 “내 스물 언저리 문학에 눈을 뜨던 때에”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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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81) 존재 181 : 소중한 존재
그들은 모두 가윈을 아꼈고, 가윈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잘 알았으므로 이번에 그들을 향한 사랑은 한층 현명한 것이었다
《윌리엄 스타이그/홍연미 옮김-진짜 도둑》(베틀북,2002) 23, 84쪽
소중한 존재였다
→ 소중한 벗이었다
→ 보배로운 이웃이었다
→ 보배로웠다
→ 소중했다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 얼마나 여린지
→ 얼마나 힘이 없는지
→ 얼마나 여린 넋인지
→ 얼마나 여린 숨결인지
…
벗이면서 이웃이기에, ‘벗’이나 ‘이웃’이라는 낱말로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나타내기 어렵다고 여겨 ‘존재’를 넣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한테 벗인 이는 벗이면서 이웃입니다. 우리한테 이웃은 이는 이웃이면서 벗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소중한 존재였다”가 아닌 “소중했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이처럼 적으면 두 가지 뜻과 느낌뿐 아니라 다른 여러 뜻과 느낌도 함께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같은 대목도 이와 같아요. “얼마나 약한지”라 적으면 됩니다. 느낌을 한결 살리고 싶다면 ‘넋’이나 ‘숨결’이나 ‘사람’이나 ‘목숨’ 같은 낱말을 넣습니다. 4347.5.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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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가윈을 아꼈고, 가윈은 그들한테 무척이나 애틋한 이웃이었다 … 그렇지만 그들이 얼마나 여린지 잘 알았으므로 이번에는 그들을 한층 슬기롭게 사랑을 했다
‘소중(所重)하다’는 “매우 귀중하다”를 뜻하고, ‘귀중(貴重)하다’는 “귀하고 중요하다”를 뜻하며, ‘중요(重要)하다’는 “귀중하고 요긴함”를 뜻하고, ‘귀(貴)하다’는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를 뜻하며, ‘요긴(要緊)하다’는 “긴요하다”를 뜻하는데, ‘긴요(緊要)하다’는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저 말이고 저 말이 이 말인 꼴입니다. 이런 한자말은 그냥 쓸 수 있을 테지만, 되도록 안 쓰면서 뜻이 또렷한 한국말로 고쳐써야지 싶어요. “보배로운 이웃”으로 손질하거나 “애틋한 이웃”이나 “좋은 이웃”으로 손질해 봅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으로 다듬고, ‘약(弱)한’은 ‘여린’이나 ‘힘이 없는’으로 다듬니다. “이번에 그들을 향(向)한 사랑은 한층 현명(賢明)한 것이었다”는 “이번에는 그들을 한층 슬기롭게 사랑하였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