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80) 존재 75 : 힘없는 존재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불행 앞에서 손을 놓고 있는 힘없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도움과 회복의 힘을 주는 아버지라는 걸 분명히 알려야 해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원충연 옮김-숨어 있는 예수》(달팽이,2008) 36쪽


 힘없는 존재 (x)

 힘을 주는 아버지 (o)


  보기글을 보면, 처음에는 “힘없는 존재”로 적지만, 곧이어 “힘을 주는 아버지”로 적습니다. ‘존재’는 ‘아버지’인 셈이며, 아버지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힘을 주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어렵거나 힘들 때 힘이 되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괴롭거나 고달플 때 왜 힘을 안 주느냐고 투덜대기도 한다지만, 힘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늘 힘을 주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힘없는’ 모습을 빗댈 만한 여러 가지를 넣을 수 있습니다. “힘없는 분”이나 “힘없는 구경꾼”이나 “힘없는 비렁뱅이”나 “힘없는 들러리”나 “힘없는 나그네”로 적을 수 있어요. 4341.1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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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 땅에서 생기는 아픔에 손을 놓는 힘없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랄 때에 돕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아버지인 줄 똑똑히 알려야 해


“인간(人間) 세상의 불행(不幸) 앞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생기는 슬픔에”나 “이 땅에서 일어나는 아픔에”로 손봅니다. “그들의 필요(必要)에”는 “사람들이 바랄 때에”로 다듬고, ‘회복(回復)의’는 ‘다시 일어설’로 다듬으며, “아버지라는 걸”은 “아버지인 줄”로 다듬습니다. ‘분명(分明)히’는 ‘똑똑히’로 손질하고 “손을 놓고 있는”은 “손을 놓는”으로 손질합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64) 존재 70 : 내 존재 따위는


작년 생일에도 엄마는 일찍 오지 않았다. 엄마 머리속에 내 존재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을지 모른다

《스에요시 아키코/이경옥 옮김-별로 돌아간 소녀》(사계절,2008) 12쪽


 내 존재 따위는

→ 나 따위는

→ 나 같은 딸 따위는

→ 내 마음이 어떤지 따위는

 …



  생일이 되어도 생일을 챙기지 않는 어머니한테 서운한 아이 마음을 그리는 글월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눈앞에 있는 아이한테 마음을 쏟지 못하면서 다른 데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아이가 보기에 어머니한테는 “나 같은 아이”나 “나 같은 딸”이 대수롭지 않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래서 이 글월에 ‘따위’라는 낱말을 쓰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보기글에서는 “나 따위”나 “나 같은 아이 따위”를 가리킨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일 따위”라든지 “내 생일잔치를 하겠다는 다짐 따위”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41.8.1.쇠.처음 씀/4342.6.28.해.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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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생일에도 엄마는 일찍 오지 않았다. 엄마 머리속에 나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을지 모른다


‘작년(昨年)’은 ‘지난해’로 고쳐 줍니다. ‘뇌리(腦裏)’ 같은 한자말이 아닌 ‘머리속(머릿속)’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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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45) 존재 66 : 가정이라는 게 아직 존재했던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루카는 가정이라는 게 아직 존재했던 그 시절로 날아갔다

《카롤린 필립스/전은경 옮김-눈물나무》(양철북,2008) 41쪽


 가정이라는 게 아직 존재했던

→ 집이라는 곳이 아직 있던

→ 집이라는 데가 아직 남았던

→ 보금자리라는 곳이 아직 있던

  …



 ‘있다’를 넣지 않고 ‘존재’를 넣는 자리를 가만히 살피면, 무언가 깊은 뜻을 담아내고 싶을 때이곤 합니다. 너른 뜻을 펼쳐 보이고 싶을 때이기도 합니다. 속생각을 들추어 내는 자리에도 두루 씁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숙고해 본다 (x)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헤아려 본다 (o)


  ‘생각’을 하지 않고 ‘고찰(考察)’을 한다고 할 때, ‘헤아리’지 않고 ‘숙고(熟考)’를 한다고 할 때, ‘살펴보’지 않고 ‘고려(考慮)’를 한다고 할 때에도 으레 ‘존재’가 튀어나오곤 합니다.


  한자말 한 마디가 다른 한자말하고 어울립니다. 토박이말 한 마디가 다른 토박이말과 어울립니다. 영어를 즐겨 섞어쓰는 분들은 영어 한두 마디로 그치지 않고, 온갖 영어를 끝없이 끌어들입니다. 일본 한자말이건 중국 한자말이건 자꾸 쓰려는 분은, 이녁 마음과 생각에 이와 같은 낱말만 가득합니다. 오래도록 익숙하게 쓰면서 굳은 낱말이거든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은 낱말이고요. 둘레에서 흔히 듣는 낱말입니다.


  태어나서 자라는 터전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마음밭을 다르게 일구듯, 태어나서 자라는 터전에서 듣는 말에 따라서 말밭도 다르게 가꿉니다. 일본 한자말이건 영어이고를 떠나서, 내 생각과 넋을 이루면서 받아들인 낱말로 글을 쓰고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아기일 때부터 어버이와 둘레 살붙이가 ‘존재’라는 말을 쓰면, 또 텔레비전에서 ‘존재’라는 말을 으레 들으려면, 또 학교에 가서 배우는 교과서를 펼치며 ‘존재’라는 말을 늘 읽고 들으면, ‘있다’라는 낱말로는 내 이야기를 펼치기에 걸맞지 않다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식구들이 존재한다 (x)

 따뜻한 식구들이 있다 (o)


  있음, 삶, 함께함, 같이 지냄, 어울림, 부대낌, 살 섞음. 하늘에는 하느님이 있고, 땅에는 푸나무가 살아가며, 마을에는 이웃들이 함께합니다. 동무들하고 같이 지내고, 길고양이와 어울리며, 낯선 사람들하고 부대끼면서, 사랑하는 이와 살을 섞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삽니다. 4341.6.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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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어느 때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루카는 집이라는 곳이 아직 있던 그때로 날아갔다


“어느 순간(瞬間)”은 “어느 때”로 다듬고, ‘가정(家庭)’은 ‘집’이나 ‘보금자리’로 다듬습니다. “그 시절(時節)”은 ‘그때’나 ‘그무렵’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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