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4.5 - Vol.6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64



사진이 찾아와서 빛이 될 때

― 사진잡지 《포토닷》 6호

 포토닷 펴냄, 2014.5.1.



  밥을 먹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 손빛이 곱구나 하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실을 다니면서 사진기를 목에 겁니다. 내 손은 둘이니 왼손에 큰아이를 잡고 오른손에 작은아이를 잡습니다. 사진기를 목에 걸지 않으면 사진기를 갖고 다닐 수 없으며, 사진기를 목에 걸어야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면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뛰노는 모습을 그때그때 찍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탈 적에도 사진기를 목에 겁니다. 두 아이를 뒤에 태운 자전거를 달리자면 허벅지가 터질 듯합니다. 그렇지만 하루 달리고 한 해 달리며 서너 해 예닐곱 해 꾸준히 달리는 동안 허벅지 힘살이 새로 붙습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할 수 있도록 기운이 늡니다. 이동안 우리들이 지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틈틈이 건사하고 싶어 한손으로는 자전거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를 쥐어 찰칵 누릅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면 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한테 오기 앞서 나는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렸어요. 자전거를 몰아 신문을 돌릴 적에 늘 한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손으로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 허벅지에 대고 탁탁 튕기면서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은 뒤 살며시 잡아서 골목집 대문 안쪽으로 휙 던집니다. 어쩌면 나는 ‘사진을 하나도 모르던 지난날’부터 ‘오늘 사진을 즐겁게 잘 찍는’ 훈련을 한 셈인지 모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6호를 읽습니다. 다달이 나오는 사진잡지가 반갑습니다. 요즈음은 전자책으로 나오는 사진잡지가 여럿 있습니다. 종이책을 받아보는 ‘사진 즐김이’가 퍽 적기에, 돈이 안 된다 하거든요. 이달에도 야무지게 나온 《포토닷》을 펼치니, 첫 이야기는 ‘세월호 사고’를 다룹니다. “현장에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국가와 ‘기레기(기자 쓰레기)’다 … 기레기라는 말은 여기서 출발한다. 자신들의 사정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혀 봐야 언론화 되지도 않고 도리어 정부 방침을 홍보하는 전도된 증거로서 기능한다. 사진에 찍혀 봤다 선동하는 불순 외부세력 또는 종북으로까지 몰리는 상황이다(18∼19쪽/이상엽).” 아, 그 ‘기레기’가 이런 뜻이었군요.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흔히 쓰기에 ‘기러기’라는 새를 엉뚱하게 부르는 이름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신문도 방송도 안 보다 보니 이런 말을 영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그렇습니다. 신문기자나 방송피디는 왜 꾸밈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할까요. 신문 지면이 좁을까요. 방송으로 내보내기에는 너무 길까요. 신문 지면이 좁다면 정치꾼 이야기와 스포츠 소식과 주식시세표를 없애면 되리라 느껴요. 우리들 이야기를 싣도록 해야지요. 경제 정책이나 무역 이야기도 덜고, 자동차 광고와 새 손전화 광고도 던 뒤, 신문에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야지요.


  세월호 사고 이야기는 앞으로도 신문과 방송에 넘치도록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신문과 방송에 어떤 이야기가 넘치도록 나올까요. 참과 거짓을 밝히는 이야기가 나올까요. 대통령이 국무위원 앞에서만 넌지시 ‘사과 발표’를 한다는 이야기를 다룰까요.





  ㅈㅈㄷ으로 일컫는 신문 가운데 ‘중앙일보’에서 일하는 박종근 기자가 찍은 사진을 다루는 글을 읽습니다. 박종근 님은 취재현장에서 ‘취재를 받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사진으로 찍히는가’를 재미나게 보여준다고 합니다. “박종근은 이 작업을 통해 먼저 신문에 나온 사진과 실제 촬영현장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현실을 비꼬는 듯 드러낸다(35쪽/김소윤).” 신문에 나오는 사진과 현장 모습은 다르다는군요. 그러면, 신문에 나오는 글과 현장 이야기는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요. 신문으로 사람들한테 알리거나 보여주는 이야기는 얼마나 ‘제대로 꾸밈없이 올바르고 알맞게’ 알리거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가요. 박종근 님이 재미난 사진을 찍는 일은 틀림없이 재미나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슬픕니다. 왜 재미난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왜 신문에 참모습을 싣지 못할까요. 왜 신문은 참된 이야기를 다루려 하지 않을까요. 왜 사람들은 참모습을 안 싣는 신문을 읽을까요. 왜 사람들은 참된 이야기를 안 다루는 신문에 얽매인 채 살아갈까요.


  사진을 찍는 김미루 님이 김용옥 님 딸인 줄 처음 깨닫습니다. 《포토닷》에서 김미루 님 사진을 다루면서 이런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모르는 채 지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미루는 김미루이고 김용옥은 김용옥인데, 굳이 두 사람 사이를 밝혀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다 다르다. 사막의 모습뿐만 아니라 낙타도 다르고 문화도 많이 다르다. 작업의 깊이를 위해 여러 곳을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얀 사막도 있고 하얀 낙타도 있다. 그리고 낙타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71, 73쪽/김미루).”


  곰곰이 생각하면, 김미루는 김미루이지만 김용옥과 살아온 나날이 있는 김미루이기도 합니다. 더 넓게 헤아리면 김미루이든 김용옥이든, 또 대통령 아무개이든 저무개이든,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로 살던 이웃이요 동무이며 살붙이입니다.





  남이란 없습니다. 서로 똑같은 ‘나’이고, 나한테서 너를 읽으며 너한테서 나를 읽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에서 너를 읽고, 네가 찍는 사진에서 나를 읽습니다.


  오진령 님이 열 해만에 새로운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2004년에 《곡마단 사람들》을 선보였고, 2014년에 《짓》을 선보입니다. “사진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때라 사진을 찍으면서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을 의식하지 않고 찍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기자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서커스에 대한 애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열일곱 나에게 서커스는 판타지였고 소우주였다 … 내가 걸어온 길은 변함없고 작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기 때문이다 … 하루 넘게 운전해서 찾아간 곳을 되돌아오길 몇 번 되풀이하면서 카메라를 내리고 자연을 바라보게 되었다(96, 101쪽/오진령).” 사진이 우리한테 찾아와서 빛이 됩니다. 사진이 우리 마음에 깃들면서 별빛이 됩니다. 사진이 우리 눈을 간질이면서 햇빛이 됩니다. 사진이 사랑을 북돋우며 꽃빛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찍는 정물, 인물, 패션 사진 모두 컬러가 어둡고 밝음을 떠나 그 안에는 맑은 ‘나’가 들어가 있다(112쪽/어상선).”와 같은 이야기처럼, 어느 사진에서든 우리들은 또 다른 내 모습을 읽습니다. 꽃을 바라보면서 꽃이 참 곱구나 하고 느끼기도 하고, 이 꽃과 같이 나도 고운 삶으로 사랑을 하면 참 즐겁겠구나 하고 느끼기도 합니다.





  빛이 되는 사진은 나한테도 너한테도 빛이 돼요. 빛이 되는 사진은 우리 삶을 밝히는 숨결이 돼요. 빛이 되는 사진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활짝 여는 노래가 돼요. “꽃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정확하게 묘사만 해도 충분히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꽃 사진은 살아 있는 생물이 그 대상입니다 … 생명에 대한 애정 없이는 좋은 꽃 사진을 얻을 수 없는 자명한 이유입니다(132쪽/김병권).” 사람도 ‘산 목숨’입니다. 사람을 찍을 적에도 꽃을 찍듯이 ‘살아서 움직이는 목숨’을 찍는 줄 느껴야 합니다. 느끼지 못하면 ‘느낌이 없는’ 사진만 찍어요. 느끼면 ‘느낌이 있는’ 사진을 찍어, 이웃 마음을 건드리겠지요. ‘감동을 빚’겠지요.


  이상엽 님이 진주 팽목항을 다녀오며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첫머리를 여는 《포토닷》은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기자 아닌 기레기라는 이들은 ‘취재원’을 ‘꽃’처럼 여기지 못했습니다. 꽃과 같은 ‘산 목숨’인 줄 느낄 때에 ‘취재원’이 아닌 ‘이웃’을 만나면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쓸 수 있어요. 죽은 사람도 아픈 사람도 슬픈 사람도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바로 나’인 줄 깨달아야, 비로소 사진기 단추를 눌러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신문사 사진기자가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볼 적에 똑같은 눈길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하고, 어느 한 사람을 안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은 어떻게 나올까요? 어느 한 사람을 취재하는 기자가 둘 있을 적에, 어느 한 사람을 잘 아는 쪽하고 잘 모르는 쪽은 서로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144쪽/최종규)?” 사랑을 아는 기자와 사랑을 모르는 기자가 똑같이 진주 팽목항에 간다면 저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까 궁금합니다. 서로를 이웃으로 느끼는 기자와 서로를 이웃으로 안 느끼는 기자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취재한다면 저마다 어떤 기사를 쓸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빛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어둠으로 드리울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빛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어둠으로 손목을 죄거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무엇입니까? 사진으로 무엇을 읽습니까? 사진으로 무엇을 찍습니까?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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