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임응식 -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예술가 이야기 3
권태균 지음 / 나무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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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5월에 싣는 글입니다.

어제 <포토닷>이 나왔기에

비로소 이 글을 걸칩니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8



사진은 무엇을 찍는가

― 사진가 임응식,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권태균 글

 임응식 사진

 나무숲 펴냄, 2006.9.28.



  사진은 으레 ‘꾸밈없이 찍어 참모습을 밝힌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진은 ‘거짓을 찍을 수 없다’고도 합니다. 숨김없이 찍고 남김없이 찍는 사진이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은 맞지 않습니다. 사진은 ‘찍는 일’이지 ‘참을 찍­는다’거나 ‘거짓을 밝힌다’거나 ‘참을 못 찍는다’거나 ‘거짓을 찍는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없던 옛날에는 ‘참을 밝히는 글(붓)’이라고 얘기했어요. 꾸밈없이 써서 참모습을 밝히는 글(붓)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글은 언제나 꾸밈없이 쓰면서 우리 누리에 깃든 참모습뿐 아니라 감춰진 모습까지 밝힌다고 할 만할까요.


  아마 누군가는 거짓을 쓰기도 하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거짓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겠지요. 꾸민 글이 있고 꾸민 사진이 있습니다. 감추는 글이 있고 감추는 사진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매체일까 생각해 봅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올바르게 보도를 하는 매체일까요. ㄱ신문을 읽는 사람은 ㄱ신문이 올바르게 보도한다고 여기겠지요. ㄴ신문을 읽는 사람은 ㄴ신문이 올바르게 보도한다고 여기겠지요. 신문을 놓고 ‘좌 편향 우 편향’이라 나누기도 하고 ‘보수신문 진보신문’이라 가르기도 하는데, 이런 잣대는 얼마나 올바르거나 알맞을는지 궁금합니다. 신문은 ‘새로운 소식을 담는 매체’일 뿐이지 싶습니다. ㄱ신문이건 ㄴ신문이건 다 다른 사람이 일하는 곳이니, 다 다른 눈길로 ‘새소식을 기사로 다룰’ 뿐이지 싶습니다.


  신문사 사진기자가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볼 적에 똑같은 눈길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하고, 어느 한 사람을 안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은 어떻게 나올까요? 어느 한 사람을 취재하는 기자가 둘 있을 적에, 어느 한 사람을 잘 아는 쪽하고 잘 모르는 쪽은 서로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느티나무에도 꽃이 핍니다. 느티꽃은 아주 작습니다. 이십 미터나 삼십 미터까지 우람하게 자라는 느티나무인데, 느티꽃은 아기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습니다. 갓난쟁이 코딱지보다도 작다 할 만한 느티꽃입니다. 그런데, 느티나무에 꽃이 피는 줄 알아채는 사람이 아주 드물고, 느티꽃을 두 눈으로 본 사람도 아주 드뭅니다. 느티나무 한 그루를 사진으로 찍는 자리에서, 느티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저마다 찍는 사진은 어떤 빛과 느낌이 될까요? 느티꽃을 잘 아는 사람이 찍는 사진과 느티꽃을 잘 모르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를까요? 느티꽃을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이 ‘느티나무 찍은 사진’을 바라볼 적에 이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얼마나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 훗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어서도 임응식은 그날 사진관에서 겪었던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사진사 할아버지의 눈빛이었습니다. 사진기 앞에 선 노인의 눈빛은 아주 엄숙하고 경건했지요 … 임응식은 행크 워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가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충격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  (8, 23쪽)



  권태균 님이 쓴 《사진가 임응식,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나무숲,2006)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무숲’이라는 출판사는 어린이책을 펴내고, 이곳에서는 ‘삶을 그림으로 빚은 사람’ 이야기를 엮습니다. 나무숲 출판사에서 펴낸 책 가운데 ‘삶을 사진으로 빚은 사람’ 이야기는 오직 하나, 임응식 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에서 ‘사진길 걸어온 사람’ 이야기는 매우 드뭅니다. 어린이책을 두루 살피면, 임응식 님과 최민식 님 꼭 두 사람 이야기만 있습니다. 그만큼 두 어른이 한국 사진밭에서 큰 빛이 되었다 할 만하고, 그만큼 ‘위인전에서 사진가를 안 다루거나 못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그림을 그린 분들 이야기는 어린이책으로 꽤 많이 나옵니다. 사진을 찍은 분들 이야기는 어린이책으로 거의 태어나지 못합니다. 한국 사진가뿐 아니라 외국 사진가 이야기도 어린이책으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다큐사진을 찍든 보도사진을 찍든 예술사진을 찍든 패션사진을 찍든, 그러니까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가 이야기’는 좀처럼 어린이책으로 나오지 못해요.


  사진가는 아이들한테 보여줄 만한 ‘어른’이나 ‘직업인’이 못 되기 때문일까요. 사진가가 걷는 길은 아이들한테 보여주거나 아이들 손을 잡고 이끌 만한 길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 임응식은 용감하게 촬영을 다녔습니다. 창작의 자유를 빼앗는 통제에 대항한 거지요. 일본 헌병들은 그런 임응식을 따라다니며 감시했고 유치장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 임응식이 태어나고 자란 부산은 지금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곳입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눈 덮인 세상을 대하니 뱃멀미 따위는 씻은 듯이 사라졌지요. 퍼붓는 눈을 맞으며 임응식의 눈과 가슴은 시원하게 열렸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든 임응식은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  (15, 17쪽)





  어린이가 읽을 만한 사진비평을 쓰는 어른이 없습니다. 어린이가 함께 즐길 만한 사진 이야기를 쓰는 어른이 없습니다. 청소년한테 들려주는 사진빛과 사진삶과 사진길을 책으로 엮는 일도 아직 없습니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직업인’이기도 하지만, ‘취미로 사진을 노래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직업을 떠나 한길을 파는 이슬떨이’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누가 찍을까요. 사진은 무엇을 찍는가요. 사진은 어느 나이에 이른 뒤에 찍을까요. 사진은 어떤 사람이 어느 자리에서 찍는가요.


  전문과정을 밟거나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다가 전문과정을 밟을 수 있고 유학도 다녀올 수 있어요. 어떤 스승한테서 배워야 하거나 책을 많이 파야 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즐기고 노래하면서 찍는 사진이요, 스스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사진입니다.



.. 아름다운 창덕궁의 단풍 아래 끝없이 늘어선 핏빛 시체를 보며 임응식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전쟁으로 벌어진 끔찍한 상처를 눈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려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상처를 향해 또 한 번 총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임응식에게 기록사진가로의 변신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서 남겨야 한다’는 임무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임응식은 냉정해야 하는 사진가의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 임응식은 사진 전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의 기록을 통해 진실과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  (24, 31쪽)





  아이들은 글쓰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그림그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찍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 아이들 손에 들어가기 앞서, 여느 손전화였을 적에도 아이들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찍는 사진에 눈길을 보내는 어른이 없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찍는 수많은 사진을 눈여겨보거나 비평하는 어른이 없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아이들한테 사진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어른조차 없습니다. 아이들은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를 놓고 여러모로 많이 배웁니다. 아이들은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를 배울 자리가 무척 넓고, 학원강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여느 어버이가 아이한테 글쓰기와 한글 익히기와 그림그리기를 이끕니다. 그러면, 여느 집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사진찍기와 사진읽기를 이끌까요? 이끌 수 있을까요? 이끌려는 마음이 있을까요?



.. 임응식은 건축사진을 독자적인 예술사진의 하나로 다루었습니다. 건물의 형태를 똑같이 담아내는 틀에서 벗어나, 건물이 가진 세밀한 표정과 이야기를 찾아내 건축사진의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 지금은 누구나 사진의 예술성을 인정하지만, 임응식이 활동하던 시절 우리나라 문화계는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57, 63쪽)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사진을 곁에 두면서 사랑하고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릴 적부터 제 둘레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빛을 고운 손길로 착하게 사진으로 담는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권태균 님이 쓴 《사진가 임응식,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는 ‘사진은 무엇을 찍는가’라는 대목을 어린이 눈높이로 들려주려고 첫발을 내딛은 책이라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너희도 우리(어른)와 함께 사진을 즐기면서 사진빛을 노래하지 않겠니?’ 하고 따사롭게 건네는 이야기까지 뻗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꾼 아름다운 동화책과 그림책과 만화책을 두루 읽으면서 꿈을 키우고 사랑을 돌봅니다. 아이들이 즐길 아름답고 멋있으며 살가운 사진책이 이제부터 하나씩 둘씩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면 아주 좋겠습니다. 사진길 걷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어른들이 ‘어린이가 함께 읽고 즐기며 나누는 사진책’을 알뜰히 일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은 삶과 사랑과 꿈을 찍습니다.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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