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읽지 않는다



  길을 내려고 멧자락에 구멍을 내거나 멧자락 따라 기슭을 깎기도 한다.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길을 내면서 왜 나무는 모조리 베거나 뽑거나 없앨까. 무엇을 할 생각일까. 무슨 생각일까. 한국사람이 쓰는 나무 가운데 한국에서 자란 나무는 거의 없다. 책걸상을 짜든, 책꽂이나 옷장을 짜든, 공사판에서 건물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에 받침나무를 삼든, 한국에서 쓰는 나무는 한국에서 자란 나무가 아니다. 한국에서 쓰는 나무는 모두 나라밖에서 사들인다. 한국에서 쓰는 종이도 나라밖에서 자라던 나무를 잘라서 만든 종이일 뿐이다.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로 종이를 만들지 못하고,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집을 짓지 못한다.


  책을 읽거나 쓰는 사람 가운데 나무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상맡에 앉아 셈틀을 켠 이 가운데 나무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나무를 읽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한겨울과 이른봄에도 능금이나 배나 딸기나 포도를 먹으면서, 정작 나무를 읽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무를 심지도 않으면서 나무를 함부로 쓰는 한국사람이다. 나무를 가꾸거나 돌보거나 사랑하거나 아끼지도 않으면서 나무를 마구 쓰는 한국사람이다. 제 나라 제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책과 신문만 읽는 한국사람이다.


  나무를 모르는 채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무가 자라는 흙을 모르는 채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무가 자라는 흙에서 함께 살아가는 풀을 모르는 채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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