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4.23.
 : 나도 자전거 탈래


- 어제 작은아이가 잠든 뒤에 큰아이만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했다. 작은아이가 낮잠을 깨어 일어나고 보니 누나도 아버지도 없으니 징징 울면서 “나도 자전거 탈래.” 하고 노래했단다. 오늘도 낮잠을 깨어 일어나면서 “나도 자전거 탈래.” 하고 노래한다. 그래, 알았으니까 울지 말아라.

- 면소재지에 다녀오자고 하니 작은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어느새 빙그레 웃는다. 그동안 면소재지 중국집에 밥을 시켜먹지 않다가 오랜만에 중국집 밥을 시켜서 집으로 나르기로 한다. 면소재지 가는 길에는 이웃마을 들길을 달린다. 어느덧 사월이 깊으면서 유채꽃이 저문다. 논마다 노랗게 물들던 물결이 차츰 수그러든다. 유채물결은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한 차례 나고 이듬해 봄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 면소재지로 들어선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아버지, 나는 다섯 살 때에 자전거 밟지 못했는데. 이제 일곱 살이니까 밟을 수 있어. 앞으로 여덟 살이 되면 혼자 자전거 탈 수 있어?” 하고 묻는다. 여덟 살에 네가 혼자 자전거를 몰 수 있을까? 너 스스로 타려고 하면 할 수 있겠지.

- 면소재지로 들어선다. 면내 고등학교 머스마 넷이 길을 다 차지하며 걷다가 빈 깡통을 하늘로 휙 던진다. 그러고는 그냥 간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나. 빈 깡통을 버리는 놈이나 아랑곳하지 않는 놈이나 모두 똑같다. 아이들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부른다. “어이. 여기 깡통 주워! 여기는 너희들이 사는 동네야. 너희 동네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지.” 이런 아이들은 저희 숫자가 많으면 어른이라도 깔보곤 한다. 그래서 살짝 거친 말투로 깡통을 주으라고 이른다. 얌전히 줍는다. 그러나 우리 자전거가 지나가니 다시 깡통을 던져서 버린다. 자전거를 다시 멈추고 아이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얘들아, 너희 깡통 다시 버렸지?” “안 버렸어요.” “깡통 버리는 소리 다 들었어.” “안 버렸다니까요. 저기 쓰레기통에다가 던졌어요.”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나 거짓말을 했다. 시골 면소재지에 쓰레기통은 없다. 생활쓰레기 버리려고 군청 쓰레기봉지에 쓰레기를 담아서 내놓은 곳만 있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이 아이들 어버이는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아이들만 탓할 수 없으나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시골사람 누구나 비닐을 아무 데에서나 태울 뿐 아니라 빈 깡통과 병을 갯벌에도 버리고 멧기슭에도 버리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이런 엉터리 어른 모습을 고스란히 따라할 까닭이 없다. 엉터리를 따라하면 스스로 엉터리가 된다. 아름다운 모습을 따라하면 아름다운 삶이 된다. 아이들 스스로 엉터리가 되려 하니, 아이들은 그저 엉터리가 될 뿐이라, 이 아이들을 따로 나무라거나 꾸짖거나 말을 해 주어야 한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면, 도시 어디에서나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짓을 일삼겠지.

- 면소재지 중국집에 주문을 하고는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과자 몇 점을 산다. 중국집으로 돌아가서 상자를 받는다. 아이를 태우고 상자를 얹는다.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앉힌다. 아주 큰 짐차가 지나간다. 다 지나갈 때까지 자전거를 세우고 기다린다. 요즈음 고흥에서는 몹쓸 막공사를 벌인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터 한쪽을 군에서 몰래 해제를 해 놓고는 강제수용으로 빼앗아 광주 교육청에 팔았다. 그곳에 광주 청소년 수련원을 짓는단다. 하루아침에 땅을 빼앗긴 ‘국립공원 터 마을에 사는 사람’은 군청과 광주시에 따지지만, 아무도 귀여겨듣지 않는다. 그저 공사를 밀어붙인다. 이 공사를 하는 큰 짐차가 아주 자주 오간다.

- 집으로 돌아간다. 면소재지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면소재지 언저리를 떠돈다. 이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하며 놀까.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하루 빨리 시골을 떠나고픈 생각을 나눌까. 시골에서 시골빛을 즐기면서 예쁘게 놀고 꿈꾸는 길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골 중·고등학교 교사는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시골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꿈과 사랑을 물려줄까. 아이들은 시골에서 태어난 뒤 시골에서 씩씩하게 살며 시골을 가꾸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까마득하다. 그러나, 해가 기우는 하늘빛은 곱고 바람은 상큼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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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4-25 17:29   좋아요 0 | URL
저도 자전거 타고 싶네요.^^

숲노래 2014-04-25 17:53   좋아요 0 | URL
자전거와 함께
싱싱 시원하게 바람을 마시면서
사월 하늘을 마음껏 노래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