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끈은 낡지 않다



  눈으로 바라보면서 낡다고 생각하면 낡은 끈이 된다. 눈을 감고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면서 끈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면 끈이 된다. 끈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손에 쥐어 한 쪽씩 넘기면 그예 책이 된다. 낡은 끈으로 묶은 낡은 책이라고 여기면 그예 낡은 책이 된다.


  2004년에 처음 나오고 2014년에 여러 쇄를 찍은 책은 어떤 책일까. 낡은 이야기를 담은 책일까 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일까. 1994년에 처음 나온 뒤 더 찍지 못했기에 1994년에 나온 대로 내 앞에 놓인 책은 어떤 책일까. 1974년에 처음 나오고 2014년에 새로 찍은 책은 어떤 책일까.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찍는 책이 있다. 몇몇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기에 한 번 찍고 나서 다시 못 찍지만, 헌책방에서 애틋한 손길을 받는 책이 있다. 책은 책을 읽는 사람 몫이지, 책 몫이 아니다. 책은 그저 책으로 있을 뿐이요, 우리들이 책에 빛과 값과 넋과 숨결을 불어넣는다. 책에 깃든 이야기는 글쓴이 몫이 아닌 읽는이 몫이다. 글쓴이는 이녁 온 사랑과 꿈을 이야기로 엮어 책으로 묶는다. 읽는이는 글쓴이가 바친 사랑과 꿈을 이야기로 읽을 뿐 아니라, 읽는이 나름대로 새로운 빛과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짓는다.


  낡은 끈이 낡은 까닭은 낡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끈이 끈인 까닭은 그저 끈으로 마주하면서 아끼기 때문이다. 헌책도 없고 새책도 없다. 모두 똑같은 책이다. 종이로 빚은 책과 종이에 앉히지 않고 마음에 담는 책은 모두 똑같은 책이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