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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또 진다 - 손석춘과 지승호의 대자보, 창간호 01 ㅣ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1
손석춘.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4월
평점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0
이대로 가는 삶이 아름답습니까?
― 이대로 가면 또 진다
손석춘·지승호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4.19.
곁님 핏기저귀를 애벌빨래 해 놓고 두 아이 잠자리를 살핍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작은 책상맡에 앉아서 글씨쓰기를 하다가 “나 잘래요. 졸려요.” 하고 말한 뒤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눕습니다. 큰아이는 자겠다고 말하면 언제나 몇 분 안 되어 곯아떨어집니다. 낮잠이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아이는 이렇게 까무룩 꿈나라로 갑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열 해쯤 앞서를 돌아봅니다. 그무렵에는 곁님 속옷을 손빨래 할 수 있는 사내가 드물었습니다. 거꾸로 보면, 오늘날에도 가시내는 사내 속옷이며 양말을 모두 빨래합니다. 빨래기계에 넣든 손으로 비비든 아직도 집식구 빨래는 거의 다 가시내 몫입니다. 빨래기계를 쓸 줄 모르는 사내도 꽤 많지 않을까요? 속옷이나 양말은 빨래기계에 넣어서는 잘 안 빨리고, 손으로 비비고 헹구어야 잘 빨리는 줄 아는 사내는 퍽 드물지 않을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 가운데 아기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손으로 비벼서 빨래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지난날에는 모두 천기저귀였을 테지만, 이제는 종이기저귀를 쓰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서는 거의 다 종이기저귀를 씁니다. 천기저귀를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지만, 천기저귀를 손으로 빨래하는 사람은 더욱 드뭅니다.
이불을 발로 꾹꾹 눌러서 빨래하는 살림꾼이라면 기저귀를 마땅히 손으로 빨겠지요. 걸레를 손으로 빨고, 집식구 옷가지를 손으로 복복 비비면서 ‘여기에 때가 많이 탔구나’라든지 ‘이쪽이 많이 해졌구나’ 하고 생각하는 살림쟁이라면 똥기저귀이든 핏기저귀이든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빨래하리라 생각합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농민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 걱정스러운 것은 여전히 문재인 의원 같은 분이 차기 대선 출마를 언급하면서 계속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차이를 강조한다는 거예요. 마치 자기들 외에는 깨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는 듯이 주장하거든요 … 스스로 진단했듯이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과오가 이명박 정부한테 정권을 넘겨준 거라면, 왜 그랬는지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 (22, 23, 24쪽)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손빨래를 했습니다. 마흔 살이 된 올해에도 손빨래를 합니다. 앞으로 스무 해가 흘러 예순 살이 되어도 손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손빨래를 하면 마음이 차분하면서 따스합니다. 손빨래를 하는 동안 옷과 이불을 더 찬찬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몸이 얼마나 작은지 헤아리고, 곁님 몸이 어떠한가를 살핍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며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빨래하며 ‘밥을 잘 삭히고 튼튼하게 자라는가’를 곰곰이 눈여겨보았습니다.
내 어버이와 곁님 어버이가 몸져누우면 그때에도 기저귀를 쓸까요. 어쩌면 늙은 할매와 할배가 기저귀를 대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저귀를 대어서 바지런히 갈며 빨아야지요. 아기 똥이든 할매 똥이든 모두 같습니다. 사랑하는 집식구 몸을 살피고 돌보는 일은 언제나 같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내가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듯,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가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사랑둥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녁 아이들을 살뜰히 아낍니다.
밥을 차리면서 이 밥을 누가 얼마나 맛나게 먹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맛나게 먹은 밥으로 신나게 일하거나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밥상맡에 둘러앉고, 즐겁게 노래하듯이 수저를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박정희 권력은 비정했잖아요.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 이런 게 지금 국면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고요 … 한번 상상해 볼까요? 만일 손석희가 〈뉴스타파〉로 옮겨갔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뉴스타파〉에 엄청난 기부금, 후원금이 몰렸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 어려운 환경에서 싸우는 사람에게 좀더 힘을 실어 주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 진보 진영 내부에서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얘기를 듣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 (32, 37, 38, 55쪽)
어떻게 가꾸는 삶이 아름다울까요?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 아름답겠지요. 어떻게 나아가는 삶이 사랑스러울까요? 사랑으로 나아가는 삶이 사랑스럽겠지요.
평화를 생각하기에 평화롭습니다. 전쟁을 생각하기에 툭탁거리거나 싸웁니다. 민주를 생각하기에 민주를 이룹니다. 독재를 생각하기에 독재가 불거집니다. 착한 돈을 생각하기에 착하게 돈을 벌어 착하게 씁니다. 안 착한 돈을 생각하기에 안 착하게 돈을 벌어 안 착하게 돈을 써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고 느껴요. 스스로 삶을 어떤 생각으로 지으려 하느냐에 따라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이 된다고 느껴요. 아름다울 삶을 생각해야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울 삶이 아니라 돈을 더 벌 삶을 생각하면 아름답지 못해요. 아름다울 삶이 아니라 대학교 학벌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생각하면 이때에도 아름답지 못해요.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대학교도 다니고 돈도 즐겁게 벌면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삶을 가꾸면서 자가용을 몰고 도시에서 아파트를 얻으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넋이 아닐 적에는 책을 많이 읽어도 아름다운 말을 베풀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얼이 아닐 때에는 훌륭한 스승한테서 배운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길을 걷지 못합니다.
.. 이명박이나 박근혜만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진보운동 세력 내부에서도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 폐쇄적인 1980년대식 비합법 조직을 지금까지도 유지하다 보니 자기들의 경직성을 못 느끼는 겁니다. 오히려 그 경직된 사상을 아직도 엄청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소통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고 함께 토론해야 해요. 아마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자신 있게 얘기 못 할걸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사상은 잘못된 거죠. 굳이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런 폐쇄적인 사상으로는 어떤 변혁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41, 53쪽)
손석춘·지승호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책 《이대로 가면 또 진다》(철수와영희,2014)를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말, 이대로 나아가면 아름다울는지요? 한국에서 한국말을 주고받는 한국사람으로서, 참말, 이대로 살면 아름다운가요?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한 척 거꾸러집니다. 기우뚱하다가 뒤집어지면서 가라앉습니다.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배가 어딘가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손을 쓰지 않다가 삼백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에 갇힌 채 바닷속에 잠겼습니다.
아주 놀라울 뿐 아니라 끔찍하고 슬픈 일이 벌어졌으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고 밝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를 몰던 사람도,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저 멍합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과 제주여행을 가던 어른들은 왜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배가 거꾸러져서 이렇게 되는데, 배가 거꾸러지지 않아도 삶과 죽음 문턱에서 아픈 이웃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 곳곳에서 아파서 끙끙 앓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계급과 신분과 학력과 지역과 재산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얼굴과 몸매와 키 때문에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1등이 아니면 뒤로 처질 뿐 아니라 눈길이나 사랑을 못 받는 한국 사회입니다.
.. 물론 〈한겨레〉가 조중동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정말 창간 이후 진보와 노동 쪽에 근거한 이야기와 의제 설정을 충실히 해 왔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후임은 거의 보수적 학자로 채워집니다. 미국식 사회과학자, 미국식 박사들이 대학을 지배하는 거죠. 1980년대만 해도 대학 총장들이 지식인의 사명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아예 없어요. 총장들이 다 경제학이나 경영학 하는 사람들이죠. 인문적 소양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 그 두 사람이 처절하게 뭔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무너졌으면 정말 괜찮은데, 김대중은 공기업까지 다 팔아넘겼고, 노무현은 한미FTA를 강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 (72, 86, 104쪽)
비가 내리는 사월입니다. 비가 내리면서 아주 조용합니다.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밤바람은 선선합니다. 마을 어귀에도 저 먼 큰길에도 오가는 자동차가 없습니다. 오직 빗소리가 마을과 집을 감쌉니다.
비가 그치면 멧새가 노래하겠지요. 멧새 노랫소리 사이로 개구리 노랫소리가 퍼지겠지요. 개구리 노랫소리에 이어 머잖아 풀벌레 노래잔치가 펼쳐지겠지요.
어제 낮에 마을 들판에서 제비 여섯 마리를 보았습니다. 딱 여섯 마리를 보았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마을 들판에서 제비 수백 마리를 보았습니다. 올해에는 고작 여섯 마리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지난해 여름에 제비들이 한창 시골집마다 처마 밑에 깃들어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울 적에 항공방제를 한다면서 헬리콥터가 온 마을과 들과 숲을 날아다니면서 농약을 뿌려댔어요. 농약바람이 보름 남짓 불면서 제비가 거의 다 사라졌고, 개구리도 거의 다 사라졌어요. 풀벌레 또한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쓰레기를 아주 잘 태웁니다. 비닐이든 농약병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태웁니다. 감나무 옆에서도 태우고, 이웃집 돌울타리 옆에서도 태웁니다. 비닐 타는 냄새가 이웃집에 퍼져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농약이 이웃집으로 날려 냄새가 코를 찔러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골에 젊은이와 아이가 사라져 풀(나물)을 뜯을 사람이 없는데다가, 풀을 뜯길 소나 짐승도 사라지니, 그야말로 시골에서는 풀을 잡는다며 온통 농약투성이입니다.
.. 박근혜는 한 번도 서민으로 살아 본 적이 없죠. 당연히 권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 박근혜는 자기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노동에 대한 생각이 닫혀 있어요. 최소한 진실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안 보입니다 …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면서 생각을 좁혀 갈 수 있는 토론이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진보를 이루려면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현실의 한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해요 .. (91, 100, 106쪽)
이대로 가는 삶이 아름답습니까. 이대로 나아가는 삶이 사랑입니까. 이대로 내달리는 삶이 꿈입니까. 이대로 치닫는 삶이 즐겁습니까.
대통령을 바꾼대서 나라가 바뀌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바꾸면 대통령이 바뀔 뿐입니다. 나라가 바뀌려면 나라를 바꾸어야 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 사회를 바꾸어야지요. 나라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려면, 나라와 사회를 이루는 사람이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을 찾고 꿈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름답게 걸어갈 길을 찾고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길을 살피며 즐겁게 노래할 길을 가꾸어야 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대통령 뽑는 자리에서 또 엉터리 같은 일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여린 아이들과 착한 어른들이 터무니없이 바닷속에 잠기는 일이 다시 터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참말 이런 삶이 재미있을까요? 이대로 그냥 가는 삶이 우리한테 빛이나 소금이 될 수 있을까요?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