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26. 말을 가꾸면서 삶을 가꾼다
― 말과 넋과 삶

 


  러시아사람 코르네이 추콥스키 님이 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양철북,2006)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두 살과 다섯 살 사이 아이들 말을 귀여겨들으며 이 아이들 말에서 얻은 슬기로운 빛을 갈무리해서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30쪽과 35쪽에서 “어린 시절에 익히는 것 가운데서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단어와 문법이라는 보물이다 …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입말에 대한 지식을 익히도록 도우면서 점점 더 많은 새 단어를 알려줘 어휘력이 풍부해지도록 해 줘야 할 임무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의 정신 발달은 어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임무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런 뜻에서 아이들이 말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이 생각을 잘하도록 가르친다는 뜻도 된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한테 낱말과 말씨를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인 한편, 아름답고 알차게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잘하도록 가르치면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잘 가꾼다고 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잘 가꾸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스스로 아름다운 길을 찾고 삶을 즐겁게 가꾸며 힘껏 배울 테지요.


  그런데, 지구별 여러 나라 가운데 한국에서만큼은 한국 어린이가 한국말을 제대로 못 배웁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이녁 아이한테 한국말보다 영어와 한자를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치려 합니다. 아직 한국말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아이한테 영어와 한자를 억지로 쑤셔넣으려 해요.


  왜냐하면, 영어와 한자를 더 이른 나이에 배우면 더 잘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이 말은 참으로 맞습니다. 더 일찍 배우면 더 잘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가지를 더 일찍 배워서 더 잘하면, 다른 것은 뒤로 밀리면서 제대로 못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올바르게 써야 할 아이들이 영어와 한자를 배우느라 한국말은 제대로 모르거나 엉터리로 쓰고 맙니다.


  영어와 한자를 학교와 집에서 일찍부터 가르친 지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영어와 한자를 너무 일찍부터 배운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이 어른들이 새롭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른바 ‘영어·한자 조기교육’이 한 세대를 돌았어요. 어릴 적부터 한국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이 어버이가 되어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예전처럼 영어와 한자를 또 너무 일찍 함부로 가르칩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아가며 어떤 한국말을 쓸까요.


  우리 겨레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과 번역투 물결에 휘둘려야 했어요.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영어와 서양 문명 소용돌이에 휘둘려야 했어요. 이런 틈바구니에서 한국말은 뿌리내리지 못하거나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가리키는 낱말은 으레 서양말이거나 한자말일 뿐입니다. 한국말로는 새로운 시설이나 설비를 가리키지도 못해요.


  오늘날 지식인을 돌아보면, 인문 지식이나 역사 지식이나 사회 지식은 있으나 ‘한국말 지식’이 없지 싶습니다. 인문이나 역사나 사회를 슬기롭게 바라보거나 살피는 눈썰미 있는 지식인은 있으나, 한국말을 슬기롭게 바라보거나 제대로 살피는 눈썰미 있는 지식인은 드물구나 싶어요. 지식인들은 ‘하여’ 같은 말투를 자꾸 씁니다. 한국말 아닌 얄궂은 말투입니다. ‘이리하여’나 ‘그리하여’라 써야 올바르지만, 지식인은 한국말을 올바로 쓰지 않습니다. 글머리에 ‘아울러’나 ‘더불어’를 외따로 쓸 수 없는데 이런 말투가 자꾸 퍼져요. ‘이와 아울러’나 ‘이와 더불어’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하지만’이 잘못 쓰는 말투인 줄 헤아리는 국어학자나 교사는 매우 드뭅니다. ‘그러하지만(그렇지만)’처럼 적어야 올바른 줄 알아차리지 않아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를 통하다’나 ‘-에 대한’이나 ‘-에 있어서’ 같은 일본 말투나 번역 말투뿐 아니라 ‘-의’하고 ‘-적’을 함부로 붙이는 일본 말투와 일본 한자말을 바로잡거나 고치려는 사람조차 퍽 드물어요. 오랫동안 길들다 보니 이러한 말투가 아니면 이녁 뜻을 나타낼 수 없는 줄 여깁니다. 지식인과 문학인이 이런 말투를 쓴 지 고작 백 해가 안 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지식인과 문학인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와 교사와 아이들까지 이런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써요. 백 해만에 이런 말투가 한국말을 잡아먹어요.


  현기영 님이 쓴 청소년소설 《똥깅이》(실천문학사,2008)를 읽다가 “집구렁이는 곡식을 축내는 쥐들을 없애 주는 고마운 존재이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같은 글월을 보았어요. 청소년문학에 나타나는 “고마운 존재”와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일본 한자말과 일본 말투는 거의 걷잡을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 글월은 “집구렁이는 곡식을 거덜내는 쥐들을 없애 주어 고마우면서도 가까이 할 수 없도록 두렵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또는 “고마운 님”이나 “두려운 님”처럼 적어야겠지요. 집에 있는 성주인 구렁이인 터라 ‘님’이라고 가리켜야 알맞아요. ‘존재’도 ‘대상’도 아닙니다.


  청소년은 청소년문학을 읽으면서 말을 익힙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말을 배웁니다. 여기에 덧붙여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말을 듣습니다. 손전화나 컴퓨터를 켜면 뜨는 온갖 말을 바라봅니다. 학교와 마을에서 어른들이 읊거나 외거나 지껄이는 갖가지 거칠거나 막된 말까지 청소년과 어린이가 듣습니다. 신문에 나오고 책에 적히는 수많은 말을 청소년과 어린이가 찬찬히 마주합니다.


  알맹이만 훌륭하면 알맹이를 담은 그릇인 말이 안 훌륭해도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알맹이를 훌륭하게 가꾸느라 알맹이를 담는 그릇인 말은 안 훌륭하게 내팽개칠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훌륭한 알맹이처럼 훌륭한 그릇이어야지 싶습니다.


  말과 넋과 삶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말만 깨끗할 수 없고, 넋만 깨끗할 수 없으며, 삶만 깨끗할 수 없습니다. 말이 깨끗하기에 넋을 깨끗하게 가꾸고 삶 또한 깨끗하게 가꾸려고 해요. 넋이 깨끗하기에 말과 삶을 함께 깨끗한 길로 가꾸려 합니다. 삶이 깨끗한 사람은 아주 마땅히 말과 넋을 깨끗하게 가꾸어요. 4347.3.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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