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48] 꽃송이 떨어지는 소리
― 봄이 무르익는 사월
꽃송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동백꽃은 송이가 무척 소담스럽도록 커다랗습니다. 동백꽃이 질 적에는 꽃잎이 다 말라서 지지 않습니다. 꽃잎은 아직 멀쩡하더라도 바람에 툭 떨어지고, 바람이 없어도 살그마니 툭 떨어집니다.
오동나무에서 오동잎이 떨어질 적에도 툭툭 소리를 냅니다. 바깥에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툭 소리가 자꾸 들리면 오동잎이 지는 소리입니다. 오동나무 곁에서 지낼 적에 이런 소리를 곧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동나무뿐 아니에요. 감나무에서 감잎이 질 적에도 ‘툭’까지는 아니더라도 ‘톡’보다는 살짝 센 소리가 퍼집니다. 후박나무에서 잎이 질 적에도 ‘토옥’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나요. 마당 평상에 앉거나 누워서 후박나무 그늘을 누리다가 가끔 후박잎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귀가 밝다면 제비꽃 씨주머니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귀를 연다면 부추꽃 씨주머니 터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지요. 귀여겨들으면 민들레나 고들빼기 씨앗이 바람 따라 날아가는 소리를 알아챌 수 있겠지요.
시골살이란 철 따라 다른 소리를 듣는 나날이라고 봅니다. 시골살이는 달 따라 다른 소리를 맞이하며 즐거운 하루라고 봅니다. 시골살이에서는 날마다 새로 피어나는 소리를 아름다운 노랫가락으로 맞이하는 웃음잔치라고 봅니다.
스스로 즐거워 노래가 샘솟습니다. 스스로 기쁨에 겨워 노래를 빚습니다. 일을 하면서 일노래요, 놀면서 놀이노래입니다. 소꿉놀이를 하면 소꿉노래이고, 흙을 만지면서 놀면 흙노래가 되어요. 동무끼리 어깨를 겯으며 동무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살이를 시골노래로 즐깁니다. 봄에는 봄노래요, 꽃밭에서 꽃노래입니다. 나무와 함께 나무노래이고, 풀밭에서 풀노래예요. 나물을 뜯는 나물노래이고, 밥을 차리면서 밥노래가 됩니다. 아이들을 재우니 자장노래이고, 숲에 깃들어 숲노래일 테지요.
삶은 노래일 적에 아름답습니다. 삶에서 노래가 빠지면 웃음이 사라집니다. 웃으며 노래하고 눈물지으며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노래를 배웁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바라보며 노래를 새록새록 짓습니다. 봄이 무르익는 사월에 동백꽃이 송이째 떨어지는 모습을 툭툭 소리와 함께 누립니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동백마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