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서구메뚜기의 모험 어린이를 위한 사진 동화 시리즈
김병규 글, 황헌만 사진, 김승태 감수 / 소년한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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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6

 


메뚜기는 어디에 있나요
―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황헌만 사진
 김병규 글
 소년한길 펴냄, 2009.6.15.

 


  빗소리를 듣습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여러 날 맑고 밝은 햇볕이 내리쬐더니 오늘은 낮부터 비가 줄줄 내립니다. 비가 듣기 앞서 우체국을 다녀옵니다. 웬만하면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우체국에 다녀오지만, 아직 아침을 먹이지 않았기에 아침밥상을 차리고 바로 자전거를 몰아 우체국으로 갑니다.


  우체국을 다녀오고 나서 씻습니다. 씻으면서 빨래를 합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지만 빗줄기가 듣지 않으니 옷가지를 마당에 내놓습니다. 빗방울이 들을 무렵 걷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미처 듣지 못했어요. 마당에 내놓은 옷가지가 외려 더 젖은 뒤에 부랴부랴 빨래를 걷습니다.


  빗물에 새로 젖은 빨래는 다시 빨지 않습니다. 다른 고장이라면 모르겠으나,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 빗물은 깨끗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비구름이라면 몇 해 앞서 일본에서 터진 핵발전소 방사능이 묻은 빗물일 수 있겠지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 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에는 우산을 받고 빗놀이를 즐기지만 오늘은 두 아이 모두 집에서만 뛰놉니다. 마루에서 방에서 쿵쿵쿵 콩콩콩 깔깔거리면서 놀아요. 작은아이 낮잠을 재우면서 빗소리를 느긋하게 들을까 생각했으나 작은아이는 한참 낮잠을 안 자겠다고 하면서 복닥이느라 빗소리를 듣기에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황헌만 님 사진에 김병규 님이 글을 붙인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소년한길,2009)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 사진책에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메뚜기나 거미나 사마귀나 온갖 풀벌레를 집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집 바깥, 그러니까 마당이나 들에서 만나는 풀벌레가 있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복닥이는 풀벌레가 있어요. 어버이인 내가 굳이 아이들더러 “얘들아, 이 녀석을 좀 보렴.” 하고 말을 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오래도록 온갖 풀벌레를 만나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마당에서 흙놀이를 합니다. 한겨울에도 손과 발이 꽁꽁 얼면서도 꽃삽으로 흙을 파고 뒤집어쓰면서 놀아요.

 


  우리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이 석 채 있는데, 이 가운데 한 채에 제비 아닌 다른 새가 깃들곤 해요. 여름에는 제비가 살지만, 여름이 저물어 가을이 찾아오면 마을 텃새가 살그마니 깃들며 겨울나기를 하더라구요. 그러면 우리 집 아이들은 처마 밑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게다가, 마을 고양이라든지 떠돌이 개가 언저네 우리 집에 찾아와요. 고양이도 개도 우리 집에서 먹이를 얻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처마 밑에서 여러 마리가 궁둥이를 척 비비면서 우리 식구와 나란히 빗소리를 듣고 빗내음을 마십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같은 책은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앞서까지 웬만한 아이들은 다 메뚜기 한살이를 스스로 알았어요. 책이나 교과서가 없더라도 스스로 삶에서 메뚜기를 만나고 마주하며 바라보았어요. 학자들이 책이나 교과서에서 사마귀를 다루기에 사마귀를 알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에서 사마귀를 만나서 알아요. 거미도 개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도 꽃도 풀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이 메뚜기를 만나지 못합니다. 제비를 만나는 시골아이도 드물어요. 이제 아이들은 책이나 교과서로 제비를 만날 뿐, 삶에서 제비를 만나지 못해요. 책이나 교과서 지식으로 제비를 생각할 뿐이에요. 사진책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은 메뚜기 사진을 무척 잘 찍었는데, 지난날에는 누구나 흔히 보던 모습을 이제는 누구도 흔히 못 보는 모습이 되어 책으로 태어난다고 할 만해요. 지난날에는 책이 없어도 누구나 알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책으로 새롭게 들여다보아야 알 뿐 아니라, 책으로 들여다본다고 해서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봄에 할미꽃이 피어요. 봄에 개나리에 앞서 진달래가 피고, 진달래에 앞서 별꽃이나 냉이꽃이 피어요. 저잣거리에서 냉이를 사거나 쑥을 사서 어머니가 국을 끓여야 먹는 냉이나 쑥이 아닙니다. 봄에 맞이하는 냉이요 쑥이에요. 봄에 만나는 꽃다지이고 민들레입니다. 책으로 만날 이웃이나 동무가 아닌, 언제 어디에서나 살가이 마주하는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메뚜기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도 사라질밖에 없어요. 메뚜기가 이 땅에서 보금자리를 누리지 못하면 사람들도 살가이 살아가기 어려워요. 숲이란 숲이면서 푸른 쉼터요, 들이란 들이면서 푸른 삶자락이에요. 섬서구메뚜기만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도 모험을 합니다. 즐거운 모험일는지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으려는 모험일는지 모르나, 모두 다 모험을 하면서 진땀을 흘립니다. 부디 이 아이도 저 아이도 맑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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