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읽는 마음

 


  이 땅에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착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스친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부딪히는 안 착한 사람들을 볼 적마다 ‘저이는 왜 착한 마음을 저렇게 눌러서 괴롭힐까’ 하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를 받으면 두근두근 설렙니다. 이것저것 자잘한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가장 느긋하며 아름다운 눈빛과 매무새로 편지를 엽니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는 글 한 줄로 띄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애틋하기에 웃음과 눈물이 살짝 솟습니다.


  반갑지 않은 편지를 받을 적에는 두근두근 떨립니다. 반갑지 않은 편지란, 누군가 나한테 사과하는 편지입니다. 거꾸로, 내가 누군가한테 사과하는 편지를 띄운다면, 내 편지를 받을 누군가도 두근두근 떨릴 테지요. 히유 한숨을 쉬다가 사과편지를 저쪽으로 밀어놓고 한참 안 들여다볼 테지요.


  사과편지 한 통을 열이틀만에 엽니다. 열이틀만에 연 사과편지를 찬찬히 읽고는 답장을 띄웁니다. 열이틀만에 사과편지를 열었더니, 오늘 새로운 사과편지가 다른 사람한테서 옵니다. 하아, 하고 숨을 고릅니다. 마음이 쓰려 도무지 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과편지를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참말 사과하려는 마음일까요, 겉으로 말을 번지르르하게 꾸미려는 넋일까요.


  내 어버이는 어릴 적부터 으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누군가한테 잘못을 했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라고.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되, 대문을 두들기지 말라고. 그 집에서 대문 앞으로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쪽에서 아는 척을 하며 사과를 받아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누군가 나한테 잘못을 했을 적에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사니까, 서울에서 전남 고흥까지 오자면 얼마나 멀까요. 아침저녁으로 서울과 고흥을 오갈 수도 없어요.


  그러면, 오늘날에는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는지요. 적어도 인터넷편지 아닌 종이편지를 띄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하고 말하면, 전화를 받는 내 쪽도 거북합니다. 손전화 쪽글로 미안하다 말하면 대꾸하기에 더욱 거북합니다. 엎지른 물은 담을 수 없지만, 엎지른 물을 새로 채울 수 있습니다. 엎지른 물을 새로 채우려는 마음인지, 엎질렀으니 그냥 지나치려는 마음인지, 사과하려는 매무새를 보면 찬찬히 읽을 수 있습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