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 깃드는 헌책방

 


  헌책방이 나이를 먹는다. 헌책방을 다니는 나도 나이를 먹는다. 헌책방지기도 나이를 먹어, 처음에는 젊은이였던 분이 아저씨 되고, 처음에 아저씨로 만난 헌책방지기가 할아버지가 된다. 처음에 푸름이로 헌책방을 찾아가던 사람은 스무 살 앳된 젊은이였다가 마흔 살 넘어서는 아저씨가 된다. 헌책방마실 스무 해가 넘고 나이 마흔을 넘긴 이라면, 이제 이녁 아이 손을 잡고 헌책방마실을 한다. 앞으로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더 지나면, 이녁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새로운 아이와 함께 헌책방마실을 할 수 있겠지.


  빛 한 줄기 흐른다. 마흔 살 먹은 책에 빛 한 줄기 흐른다. 내가 태어나던 무렵에 함께 태어난 책이 여러 사람 손길을 거치고 돌다가 헌책방 책꽂이에 살풋 놓인다. 긴긴 나들이 끝에 이곳에서 쉬는 셈일까? 이 작은 책은 내 품에 안길 수 있고, 다른 책손 품에 안길 수 있다. 이 책을 품에 안은 누군가는 한동안 즐겁게 책빛을 누리리라. 그러고는 다시 이 책을 넌지시 헌책방에 내놓아, 앞으로 스무 해 뒤쯤 누군가 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겠지.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빛이 새책방마다 감돈다. 새로 나와 읽힌 책이 스무 해를 흘러 헌책방 책꽂이로 자리를 옮긴다. 다시 스무 해가 더 흘러 다른 헌책방 책꽂이로 깃든다. 그리고 또 스무 해가 흐르면, 헌책방지기는 조용히 눈을 감을는지 모르고, 처음 이 책을 만지작거리며 아끼던 이도 늙은 헌책방지기와 함께 조용히 눈을 감을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아끼면서 삶을 지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그동안 이 책을 만나면서 웃고 울며 노래하고 춤추었을까. 이제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새롭게 만나면서 마음밭에 씨앗 한 톨 심을까.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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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3-20 11:15   좋아요 0 | URL
맞네요 헌책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닌 거네요^^

숲노래 2014-03-21 09:00   좋아요 0 | URL
그럼요.
모두들 나이를 예쁘게 먹으면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