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1) 존재 171 : 궁극의 존재

 

궁극의 존재라도 된 줄 알겠지만, 넌 그게 다야
《아라카와 히로무/서현아 옮김-강철의 연금술사 : 완전판 18》(학산문화사,2013) 126쪽

 

 궁극의 존재라도 된 줄
→ 하느님이라도 된 줄
→ 가장 높은 것이라도 된 줄
→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도 된 줄
→ 가장 끝까지 간 줄
→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 넋이 된 줄
→ 스스로를 뛰어넘기라도 한 줄
 …


  한국말사전에서 ‘신(神)’을 찾아보면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로 풀이합니다. ‘신’이라고 한다면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궁극의 존재”는 ‘신’입니다. 마지막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기는 어떤 모습이기에 ‘존재’라는 낱말을 빌어서 이야기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도 ‘신’을 ‘존재’라는 낱말을 빌어서 가리키는 만큼, 이 한자말은 이런 자리에서 꼭 써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면, 1900년대 첫무렵이나 1700년대를 살던 한겨레는 어떤 낱말로 “마지막에 이르는 모습”이나 “가장 높은 자리에 서는 모습”을 가리켰을까요? 1000년대나 100년대, 또는 기원전 2000년대에는 어떤 낱말을 썼을까요? ‘존재’라는 한자말이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을 적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던 한겨레는 어떤 낱말을 빌어 ‘신’이나 ‘하느님’ 모습을 그렸을까요?


  예전에는 ‘신’이라는 낱말도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입니다. 한겨레에서 ‘하느님’은 종교에서 가리키는 그분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목숨붙이를 넘어서는 어떤 분을 가리켜 ‘하느님’이라 했습니다. 곧, 하느님은 하느님이요 신 또한 하느님입니다. “궁극의 존재”를 가리킬 적에도 한겨레는 언제나 ‘하느님’이라 했습니다.


  때로는 짧게 간추려서 ‘님’이라 했고 ‘그분’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분이 오셨다”라든지 “님이 오셨다”고 할 적에는, 섬기거나 우러르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과는 다른 자리에서 숨쉬는 넋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4347.3.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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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라도 된 줄 알겠지만, 넌 그게 다야

‘궁극(窮極)’은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을 뜻합니다. “궁극의 존재”에서는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 무엇, 곧 “가장 높은”이나 “가장 뛰어난”이나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으로 손볼 때에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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