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0) 존재 170 : 위협적인 존재

 

유기동물보호소에 닿기도 전에 그들은 기가 꺾이고 만 것이다. 그만큼 유기동물보호소는 동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박형권-돼지 오월이》(낮은산,2012) 120쪽

 

 동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 동물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 짐승들한테 무서운 곳이었다
→ 짐승들한테 두려운 곳이었다
→ 짐승들이 무서워 했다
→ 짐승들이 두려워 했다
 …


  ‘존재’라는 한자말을 쓰는 곳을 가만히 살피면, 이 낱말을 꼭 써야 하기에 쓰지는 않는구나 싶습니다. ‘존재’라는 낱말을 쓰려고 자꾸 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다른 한자말을 끌어들이니, 어느새 ‘존재’라는 낱말도 안 쓸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말투는 자꾸 일그러지거나 딱딱해지고, 어디에서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를 만큼 뒤틀리거나 비틀린 말투가 됩니다.


  이 보기글에서 ‘존재’와 아울러 쓴 ‘위협적’은 “으르고 협박하는 듯한”을 뜻합니다. ‘협박(脅迫)’은 “겁을 주며 압력을 가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겁(怯)’은 “무서워 하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위협적’은 ‘무서워 하게 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셈이에요. 누군가를 ‘두렵게 하는’ 자리에서 쓰는 ‘위협적’이라 할 만합니다.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제대로 안다면 ‘존재’나 ‘위협적’ 같은 낱말을 어린이책에 쓰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이런 말을 알아들을는지 모르나 아이들은 이런 말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말을 모른대서 섣불리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알아들으면서 아름답게 쓸 만한 낱말과 말투로 글을 써서 동화책으로 읽힐 때에 말과 책이 함께 살아납니다. 4347.3.1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유기동물보호소에 닿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기운이 꺾이고 만다. 그만큼 유기동물보호소는 짐승들이 두려워 했다

 

“닿기도 전(前)에”는 “닿지도 않았는데”나 “닿기 앞서도”로 손보고, “기(氣)가 꺾이고 만 것이다”는 “기운이 꺾이고 만다”나 “기운이 꺾이고 말았다”로 손봅니다. ‘동물(動物)’은 ‘짐승’으로 다듬고, ‘위협적(威脅的)인’은 ‘무서운’이나 ‘두려운’으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