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와 '다시'와 '또'를 쓰임새에 따라
찬찬히 나눈 한국말사전은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 차례 더 손질해야 할 텐데,
지난 열다섯 해에 걸쳐 이와 같이 갈무리해 봅니다.
차근차근 읽고 생각하면
이 낱말을 누구나 알맞게 잘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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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다시·다시금·또·거듭·또다시
→ 하다가 그만두거나 또 해야 할 때에 쓰는 ‘도로’와 ‘다시’와 ‘또’입니다. ‘다시’는 처음 한 일을 나중에 되풀이하면서 할 때에 씁니다. ‘도로’는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갈 때에 씁니다. ‘다시’는 되풀이하여 한다는 느낌을 담고, ‘도로’는 되풀이하여 한다는 느낌을 안 담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다시 해”처럼은 쓰지만, “그 일을 도로 해”처럼은 안 씁니다. 이와 달리, “그리로 다시 가”와 “그리로 도로 가”는 써요. “그리로 다시 가”는 그리로 한 번 더 가라는 뜻이 되고, “그리로 도로 가”는 그곳에 처음부터 있었으니 그곳으로 가라는 뜻이 됩니다. “도로 네 주머니에 넣어”는 처음부터 네 주머니에 있었으니 네 주머니에 넣으라는 뜻이고, “다시 네 주머니에 넣어”는 네 주머니에 한 번 더 넣으라는 뜻입니다. 한편, ‘다시’는 잘못되거나 일그러지거나 어긋나거나 비틀린 곳을 바로잡거나 고칠 적에 흔히 씁니다. 모자란 곳을 채우거나 다스리거나 보탤 적에 쓰기도 해요. ‘또’는 처음 하던 어떤 일이나 처음에 보여준 어떤 모습이나 몸가짐과 비슷하게 되풀이할 적에 흔히 씁니다. 잘못되거나 비틀린 곳을 바로잡는다든지, 모자란 곳을 채우거나 보태는 느낌이나 뜻으로는 잘 안 씁니다. “보름달이 다시 뜬다”나 “보름달이 또 뜬다”처럼 쓸 수 있으나 “보름달이 도로 뜬다”처럼 쓸 수는 없어요. “다시 보기 싫어”나 “또 보기 싫어”처럼 쓸 수 있으나 “도로 보기 싫어”처럼 쓸 수는 없어요. “배가 도로 고프다”도 쓸 수 없어요. “배가 또 고프다”나 “배가 다시 고프다”는 쓸 수 있습니다. ‘거듭’도 어떤 일을 되풀이할 적에 쓰는데, “거듭 생각해 보아도”는 여러 차례 생각해 본다는 느낌이 짙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는 저번에 생각한 데에서 더 생각한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도로
1. 무엇을 하거나 길을 가다가 되돌아서 거꾸로나 뒤집어
- 나들이를 나오다가 깜빡 잊은 것이 있어 도로 집으로 갔다
2. 처음 있던 그대로로, 먼저와 꼭 같게
- 잘 썼으니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 놓자
- 자, 이 책 도로 너한테 줄게
다시
1. 하던 일이나 말을 되풀이해서
- 어제 하던 말을 오늘 다시 하는구나
- 해낼 때까지 씩씩하게 다시 부딪힐 생각이야
2. 하던 일이나 품은 생각을 고쳐서 새로
- 설익은 밥이 되었기에 밥을 다시 짓는다
- 이렇게 하면 안 되니 다르게 다시 해 보자
3. 하다가 그친 일이나 말을 이어서
- 아까 하다가 그친 말 다시 해 봐
- 조금 쉬었다가 다시 놀자
4. 되풀이해서 다음에 더
- 이레쯤 뒤에 다시 만날까
- 바다에 다시 가서 놀자
5. 예전 모습으로 되풀이해서
-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시 찾아온다
- 흩어졌던 동무들이 다시 모였다
다시금
: ‘다시’를 힘주어 가리키는 말
- 이 노래를 다시금 들어 보니 아주 새롭다
- 사월이 되어 제비가 다시금 돌아와 처마 밑 둥지를 손질한다
-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지만 다시금 일어나서 달린다
거듭
1. 포갠 곳에 더 포개어, 어떤 일을 하고서 더 하는 모습을 가리킴
- 아픈 곳을 거듭 건드리지 마라
- 이삿짐을 날라 주고 거듭 청소까지 도와준다
2. 어떤 일을 되풀이해서
- 거듭 생각해 보아도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 한 번 미끄러지니 거듭 미끄러지는구나
또
1. 어떤 일이 되풀이하여
- 한 그릇을 먹고 또 먹네
-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울타리가 또 무너졌다
2. 그 밖에 더, 그뿐만이 아니고 더
- 여기에 연필이랑 공책이 있는데, 또 무엇을 더 줄까
- 어제 네가 준 머리끈 또 있니
3. 어떤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새롭다 싶도록 다르게
- 이 영화는 슬픈 이야기인데, 또 재미있기도 하다
4. 그뿐만 아니라 되풀이해서 이런 모습을 더
- 고운 목소리이면서, 또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 나는 어머니한테 딸이면서, 또 동생한테 누나이다
5. 그래도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 너라면 또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안 가르쳐 줄래
- 무지개가 뜰는지 누가 또 아니
6. 놀라거나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
- 이 떡은 또 뭐니
- 난 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7. 앞말을 놓고 궁금한 듯이 되묻거나 거스르면서 쓰는 말
- 밥은 또 무슨 밥을 달라고 그러니
- 이 밤에 또 무슨 책을 읽겠다고 그래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