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꽃빛 머리카락
곁님이 머리카락에 물을 들였다. 무슨 빛깔이라고 해야 할까, 무척 밝은 빛깔을 입혔다. 여러 날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비로소 한 가지 떠오른다. 그래, 참나리꽃빛이로구나.
고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나, 그때에 참나리꽃을 처음 알아보고는 어쩜 이렇게 고운 빛이 다 있나 하고 퍽 오래도록 생각했다. 주홍이니 주황이니 다홍이라는 한자말 이름으로는 참나리꽃빛을 가리킬 수 없겠다고 느꼈다. 참나리꽃빛은 오직 참나리꽃빛이라고 할까.
곁님이 머리카락에 물을 들인 머리방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이 빛깔을 가리킬까. 머리카락에 물들이는 곳에서 ‘참나리꽃빛’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빛이름을 쓰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만할까. 참나리꽃이 자라는 들이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우리 시골집에서 면사무소 가는 길목에 참나리꽃이 해마다 스스로 피고 지는 자리가 있는데, 마을 어른들은 그곳에도 어김없이 농약을 듬뿍 치고 봄가을에 불을 질러 다 태운다. 그렇지만 참나리꽃은 해마다 씩씩하게 다시 돋고 새롭게 오른다. 참 대단하지, 참 놀랍지, 참 아름답지.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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