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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4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9
언제나 반갑습니다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4
콘노 키타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4.3.15.
밤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저녁까지 빗줄기가 이어집니다. 여러 날 포근한 날씨였기에 아이들은 내내 바깥에서 뛰놀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내리니,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찬비가 내리지 않고 봄을 부르는 비인데, 마당에서 우산놀이를 하지도 않습니다.
비가 온다며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은 마루와 부엌과 방을 건너뛰면서 복닥복닥 놉니다. 온 마을 뒤지면서 놀던 아이들이 집에서만 있자니 기운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겠지요.
- “영화 한 편 보러 가는데 이렇게 결심이 필요한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눈앞에 뒹굴거리는 시간은 전부 내 거, 자유롭게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그때가 지금 생각해 보면 꿈만 같아.” (15쪽)
- “왜 그래? 리카코 고모.” “그냥.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말똥 시대도 지나고 나니까 눈 깜짝할 사이구나.” (76쪽)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은 으레 흙투성이가 됩니다. 집안에서 노는 아이들은 살림살이와 장난감과 그림책을 방바닥과 마루에 잔뜩 깔아놓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가위를 들고 두꺼운종이를 오립니다. 이웃 아지매한테서 배운 종이오리기를 해 보기도 합니다. 빛종이를 척척 포개듯이 작게 접은 뒤 가위로 끙끙대면서 요리조리 오린 다음 살살 펼치면 가위질한 대로 대칭 무늬가 생겨요.
일곱 살 아이는 한글을 거의 떼려고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펼치고는 어떤 말이 적혔는가를 하나하나 읽어내려 합니다. 그동안 만화책을 그림으로만 보던 아이가, 그림에 따라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스스로 읽어내면서 새롭게 맞아들입니다.
아이한테 틈틈이 시를 써서 내밉니다. 아이가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즐겁게 노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시로 씁니다. 아이가 시골에서 기쁘게 누리기를 바라는 빛을 단출하게 시로 옮깁니다. 오늘은 ‘숲에서 놀다가 / 살며시 / 고개를 들어 / 나무 우거진 사이로 /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 멧새가 날아가는 하늘 / 빗물이 떨어지는 하늘 / 무지개 드리우는 하늘 / 파란 빛과 무늬와 숨결 / 모두 푸른 숲으로 깃들어 / 내 몸이 됩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적어서 내밉니다. 한글을 읽더라도 아무 글이나 읽기보다는, 마음에 깊이 젖어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서 꿈이 자라고, 가슴속에서 사랑이 일렁이기를 바라요.
- “둘 다 장하기도 하지. 사야도 하루카도 생각보다 침착해서 마음이 놓여.” “너 바보냐. 장하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녀석들 앞에선 절대 하지 마. 너무 어려서 슬픔을 표현할 말도 모르고 밖으로 도망칠 방법도 모르는 거야. 저 아이들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뿐이야.” (22∼23쪽)
- “아빠. 울지 마, 아빠. 아빠. 울지 마, 응? 울면 안 돼. 이빠는 어른이잖아.” “그래. 그래, 그래, 미안하다. 이젠 울지 않을게/” (34∼35쪽)
예쁘게 노는 아이는 예쁩니다. 스스로 예쁜 빛을 띄우면서 웃으니 예쁩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는 신납니다. 스스로 신나게 땀흘리면서 뛰고 달리니 신납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는 개구집니다. 스스로 개구지게 뒹굴면서 복닥거리니 개구집니다.
어른도 아이와 같습니다. 즐겁게 일하는 어른은 즐겁습니다. 아름답게 일하는 어른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레 일하는 어른은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일을 한다면 오로지 돈만 헤아리고야 맙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일을 한다면 오직 무엇을 이루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야 맙니다.
먹고살기도 해야 할 테지만, 먹고살기만 하려고 일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누리면서 가꾸려고 하는 일이 될 때에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거나 가꾸려고 일하는 얼거리가 못 되는 채, 저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다 보니, 웃음도 노래도 자꾸 사라지는구나 싶어요. 고되더라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일이어야 노래를 합니다. 힘들더라도 기쁘게 마주할 수 있는 일이어야 웃습니다.
산타 할배는 웃는 아이한테 선물을 준다잖아요? 하느님은 웃는 어른한테 사랑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바람님은 노래하는 어른한테 꿈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해님은 춤추는 어른한테 이야기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풀님은 어깨동무하는 어른한테 생각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우리를 둘러싼 하늘과 땅과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와 바람과 비와 풀과 꽃과 벌레를 비롯한 온갖 숨결을 돌아봐요.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우리 이웃을 느껴요. 오늘 하루 새롭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아려요. 스스로 웃을 때에 삶이 빛납니다.
- “아직 어린 저 아이들에게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나이의 아이들에게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건,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입니다. 이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아이들에게 억지로 슬픔을 지워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 부디 하루카를 특별취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설령 그 아이를 위해서라고 해도 ‘가엾게도’나 ‘기운 내렴’, 그런 태도는 오히려 그 아이에게 부담이 될 겁니다. 그런 동정은 하루카의 마음을 닫히게 만들 뿐입니다.” (86∼87쪽)
콘노 키타 님이 어린이 눈높이로 그린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넷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너무 일찍 이야기를 마무리짓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꼭 이만큼이 알맞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 권에서는 이 만화에 나오는 어린 두 아이를 둘러싼 ‘죽음’을 퍽 길게 보여줍니다. 앞선 세 권에서는 만화에 나오는 어린 두 아이 어머니가 그만 교통사고로 일찍 숨을 거두고 말았어도 두 아이가 맑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면, 넷째 권에서는 두 아이가 ‘어머니가 갑자기 차가운 몸이 되었을 적’에 이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은 아이 곁에서 곁님이 이승을 떠난 일을 어떻게 맞이해야 했는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 “왜 금방 작아지는 걸까.” “그거야 사야가 쑥쑥 크고 있기 때문이지. 옷이나 구두가 작아지는 느낌. 그립다.” (120쪽)
- “우리 아빠가 만든 걸레는 깜찍한 자수가 수놓아져 있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걸.” “사야가 좋아하겠다.” “내일 갖고 갈게. 그럼 안녕.” “저기, 고마워.” “별 말씀을. 내일 보자.” “응.” (131쪽)
애틋하게 흐르는 이야기를 따사로이 돌아봅니다. 누구한테나 죽음이 찾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해 보고, 죽음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가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교통사고는 교통사고를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가는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사랑은 틀림없이 사랑을 바라는 사람한테 찾아가는데, 아픔과 슬픔이란 누구한테 왜 찾아갈까요? 사랑을 한결 넓거나 깊게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껴안으라는 뜻에서 아픔과 슬픔도 나란히 찾아올까요?
내 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난 열흘 동안 몸 한쪽이 꽤 아픕니다. 몸 한쪽이 꽤 아프다 보니 걸을 때뿐 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에도 아프고, 드러누워도 아프며 서도 아픕니다. 앉아도 아프고,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지을 적에도 아픕니다. 몸이 아픈 나머지 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놀 적에는 더 아픕니다. 갑자기 몸 한쪽이 왜 아픈지 모르겠지만, 이 아픔도 내가 불러서 나한테 찾아왔겠지요. 몸이 한참 아프도록 깨닫거나 느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한테 찾아왔겠지요.
아픔에는 크기가 따로 없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든, 도마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든, 자동차가 들이받아 다리가 부러지든,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지든, 결핵균이 허파를 파먹든, 이가 썩든,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온몸이 아픕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발끝이 다쳐도 온몸이 흐트러져요.
아픔뿐 아니라 기쁨에도 크기가 따로 없어요. 아주 조그마한 일로도 기쁘고 아주 커다랗다는 일로도 기쁩니다. 사탕 한 알로도 기쁘며, 선물꾸러미로도 기쁩니다. 봄이 와서 기쁘고, 봄나물을 캐기에 기쁩니다. 입맞춤이 기쁘고 등에 업은 아이가 기쁩니다.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주인공 아이가 이웃 아이와 ‘아주 수수한 일’로 ‘아주 수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끝을 맺습니다. 두 아이는 이 만화책에서 마지막이 될 인사를 아주 가볍게 합니다. “내일 보자.” “응.” 하고. 아이들한테는 내일이 있습니다. 아이들 어버이한테도 내일이 있습니다. 일찍 죽은 어머니한테는? 일찍 죽은 어머니한테도 내일이 있어요. 만화책 사이사이에 살짝살짝 드러나는데, 두 아이와 아버지는 사진으로만 있는 어머니한테 날마다 새밥을 올립니다. 사진으로만 있는 어머니 앞에 놓인 밥그릇은 줄지 않지만, 늘 새밥을 올려서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요. 선물할 일이 있을 적에도 사진으로 있는 어머니도 선물을 받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있는 어머니는 ‘물건으로 된’ 선물을 아이들한테 주지 못합니다. 언제나 마음으로만 선물을 줍니다.
모두들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헤어지며, 마음으로 삶을 가꿉니다. 마음을 밝히며 하루를 열고, 마음에 노래 한 가락 담아 하루를 닫습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웃는 삶입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