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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다 1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5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 두 사람이다 1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금메달을 거머쥐고 싶은 사내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거머쥐어야 군면제와 연금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이 사내는 어린 후배 선수를 윽박지르기로 합니다. 어린 후배 선수는 윽박지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사내는 여덟 시간에 걸쳐 두들겨팹니다.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아닌 여덟 시간이지만, 선수들을 다스리는 코치는 이러한 주먹다짐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운동을 하려면 선배나 감독한테 신나게 두들겨맞아야 합니다. 어느 운동을 하든 선배나 감독은 후배를 두들겨팹니다. 선배나 감독은 후배한테 얼차려를 주고, 거친 말을 일삼습니다. 방송으로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데에도 선배와 감독 입에서는 거친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옵니다. 선수를 두들겨팬 일 때문에 감독이나 코치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운동 선수를 두들겨패는 ‘한국 문화’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운동 선수를 두들겨팬 선배나 감독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리는 못 듣습니다. 길에서 사람을 친다든지, 몽둥이나 뾰족한 것 따위로 때리면, 이런 사람은 경찰이 붙잡아 감옥에 넣는데, 뜻밖에도 운동 선수가 두들겨맞은 일은 법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학교에서 학생을 두들겨패는 교사 가운데 교사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아주 적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폭력과 폭행이 ‘문화로 뿌리내렸’구나 싶습니다. 예부터 ‘때린 사람은 잠들지 못하고, 맞은 사람은 두 다리 뻗고 잔다’ 했지만, 오늘날에는 때린 사람이 두 다리 뻗고 잘 뿐, 맞은 사람은 잠들지 못하지 싶습니다.
- ‘너희들은, 내 피를 마시고 내 몸을 먹은 너희들은, 그 피를 거슬러 내려가 그 대대손손 물려주리라. 내 승천을 방해한 대가를. 그러나 알 수 없다. 왜 하필 나인 거냐. 왜 하필 오늘인 거냐. 나의 지성이 부족했는가? 왜?’ (14∼15쪽)
- “정말로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글쎄, 출근해야겠어.” “누군지 알면은 그걸 막을 수는 있다는 거예요?” “글쎄, 그보다는, 알고 난 다음이 난 더 두려워.” (22∼23쪽)
싸움이 벌어지면, 두 쪽 가운데 어느 한쪽이 ‘맞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을 두고 네가 잘못했으니 뉘우치라 할 수 있고, 두 쪽 모두 잘못했으니 서로 뉘우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다가 맞은 쪽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있다가 맞은 쪽을 두고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때린 사람, 한자말로 하자면 ‘가해자’를 감싸는 사람이 으레 있습니다. 길에서도 그래요. 멀쩡히 선 자동차나 사람을 들이받고는 ‘네가 거기에 있는 바람에 받았다’고 말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운전수가 있어요. 자동차 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보험금을 적게 물려고 외려 큰소리 뻥뻥 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구별 어느 나라가 엄청난 군대와 무기를 앞세워 전쟁을 터뜨릴 적에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불거져요.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감싸는 매체와 지식인과 정치꾼이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미사일과 폭탄과 총칼로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는 나라를 감싸는 사람이 으레 있어요. 한 대 맞은 사람은 죽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총에 맞거나 폭탄이 터지면 목숨을 잃습니다. 다른 이 목숨을 빼앗는 짓을 서슴지 않는 군대를 거느린 나라를 감싸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전쟁 미치광이를 감싸는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여겨도 될까요?
- “설마. 그 희생물이 저 귀여운 여자애인 건 아니겠지?” “말 함부로 하지 마! 그건 나일 수도 있는 거니까.” (38쪽)
- “건강한 몸과 정신에는 나쁜 악령 같은 생각이 끼어들지 않으니까.” ‘웬 교과서 발언? 거기다 악령이라니. 이상한 말 쓰는 사람이야.’ (41쪽)
- “나도 그 여주인공처럼 행복한 얼굴로 가족을 기다린다면 배우자도 미리 안 알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미래를 미리 아는 것도 재미없잖아요.” (83쪽)
금메달과 군면제를 노리고 후배 선수를 두들겨팼을 뿐 아니라, 이녁 아버지 힘을 믿고 돈을 바쳐서 다시 국가대표 자리를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혀서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여린 이웃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면서 일터에서 내쫓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으로, 돈으로, 이름으로, 수많은 이웃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얹어, 다른 사람이 땀흘려 가꾸고 일군 열매를 가로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밭에서 가꾼 푸성귀를 가로채는 사람이라면 도둑입니다. 꿈과 사랑으로 빚은 창작품인 글·그림·만화·사진·노래를 가로채는 사람일 때에도 도둑입니다.
소매치기도 도둑이요, 표절과 도용을 일삼은 사람도 도둑입니다. 금메달과 군면제를 노리고 주먹을 휘두르다가 돈힘으로 그예 군면제에다가 금메달까지 가로챈 사람도 도둑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땀흘려 가꾸거나 일꾼 작품을 슬그머니 가로채는 사람도 도둑입니다.
- “유진 오빠, 혹 저런 타입 좋아해요?” “난 특별히 좋아하는 타입 없어. 내 눈에 들어오면 그게 내 타입이 되는 거지.” (160쪽)
-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나는 훨씬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켜줄 필요가 없을지도.” (176쪽)
1999년에 나온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는 2007년에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2007년에는 만화책이 새옷을 입고 다시 선보였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두 사람’을 그리는 이 만화는 ‘공상과학’만화라고도 할 수 있으나, 굳이 공상과학이나 판타지라는 틀에 넣지 않으면서 바라볼 만화이기도 합니다. 참말 어디에서나 우리들 곁에는 두 사람이 있거든요. 서로를 아끼는 사람 하나, 서로를 아끼기보다는 해코지하는 사람 하나, 이렇게 두 사람이 있습니다.
- ‘고모는 이상해. 제정신이 아닌 듯한 느낌도 들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길 믿으라는 거야? 어린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다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하지만 친척들 모임, 이상한 점쟁이, 때 아닌 굿, 태어나 처음 본 작은고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아니란 확신보다 불신이 더 일어나. 그 일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215쪽)
- ‘그렇지만 어젯밤 그 꿈은 뭐지. 머리에서 울려퍼지듯 무언가가 소리치고 있었어. 왜 나냐고. 왜 나냐고. 왜냐고. 그건. 그건 내가 말하고 싶어. 만약 고모 말이 맞다면, 어째서 나인 거지? 왜 나야. 왜. 왜 내가. 싫어, 정말. 이제 곧 고3이고 그것만도 힘든데. 이런 모호한 일로 신경을 쓰게 만들다니. 그 말대로라면 난 내 미래는 생각도 못하는 건데.’ (230쪽)
착함과 나쁨이라든지 옳음과 그름으로 두 사람을 가를 마음은 없습니다. 한 사람 마음속에 두 가지 마음이 도사린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온누리를 두 갈래로 금을 긋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고 했듯이, 스스로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사랑이라는 씨앗은 뿌리를 내려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사랑나무가 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미움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어찌 될까요. 미움나무가 될 테지요.
아름답게 꽃피우고 싶은 꿈을 씨앗으로 심으면, 꿈나무가 돼요. 도둑질로 제 밥그릇을 채우려는 사람은 도둑질나무가 됩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일굽니다.
주먹질과 돈질로 금메달하고 군면제를 거머쥔 사람은 어떤 나무를 심었을까요? 폭력나무와 돈질나무, 또는 거짓나무와 부정부패나무를 심은 셈이겠지요. 전쟁을 일으키는 미친 나라 정치꾼이나 우두머리라면 전쟁나무를 심은 셈입니다.
- “난 지나라면 시한부 선고 받고도 굳건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216쪽)
만화책 《두 사람이다》에 나오는 ‘두 사람’은 이무기를 함부로 죽인 탓에 미움을 받은 집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수렁’을 불러들이는 두 사람입니다. 그동안 이 집안에서는 죽음수렁에 허덕이기만 했습니다. 부디 ‘나한테는 죽음수렁이 찾아오지 말기를 바랄’ 뿐, 내 이웃이나 다른 살붙이가 어떻게 되는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굴레와 수렁을 아무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지나’라는 ‘고등학교 2학년’ 아이는 이 일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먼 앞날을 꿈꾸고 싶고, 곧 고3이 되면 하루가 고단할 만큼 바쁠 테니, 이런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지만, 시나브로 이 일을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물러서지 않고, 비키지 않아요. 에돌지 않고, 숨기지 않아요. 어른들은 그저 쉬쉬할 뿐이지만, 아이들은 쉬쉬하지 않습니다. 모두 남김없이 드러내면서 속내를 캐내고자 합니다. 씩씩하게 맞서고, 사랑스레 얼싸안습니다. 튼튼히 두 다리를 뻗어 이 땅을 밟으며, 환한 웃음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한테도 묻고, 내 이웃한테도 묻고 싶습니다.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