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ㅈㄷ신문과 ‘헌책방 아닌 헌책방’

 


  ㅈㅈㄷ이라는 신문은 그저 ‘ㅈㅈㄷ’일 뿐이라고 느낀다.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볼 까닭이 없다. ㅈㅈㄷ은 그저 ㅈㅈㄷ일 뿐이다. 박정희 같은 사람도 그저 박정희일 뿐이라고 느낀다. 이녁이 학살을 했으면 학살을 한 사람이요, 새마을운동을 밀어붙이면서 시골마다 풀지붕 없애고 고샅길을 시멘트로 메웠으면 이렇게 했을 뿐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따질 까닭은 없다. 그렇게 했을 뿐이다.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놓고 ‘학살자’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냐하면,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학살’을 저질렀으니 ‘학살자’라 할 뿐이다. 비아냥거리거나 나쁘게 하는 말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을 가리켜 ‘나쁜법(악법)’이라 말하는 사람도, 국가보안법이 참말 사람들을 나쁘게 몰아세우면서 나쁜 짓을 앞장세우는 노릇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헌책방은 그저 헌책방이다. 헌책을 사고팔기에 헌책방이다. 새책을 사고팔면 새책방이다. 그런데, 이제는 새책방에서도 헌책을 사고판다. 헌책방에도 가끔 새책이 들어와서 사고팔리지만,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은 똑같이 ‘헌책’일 뿐, 새책이지는 않다.


  생각해 보라.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는 새책을 사고판다. 여기에 얹어 헌책도 ‘중고샵’에서 다룬다. 헌책뿐 아니라 음반과 디브이디를 다루기도 하고 문방구를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 알라딘이나 예스24는 문방구인가? 디브이디샵인가? 음반가게인가? 아니다. 알라딘이나 예스24는 처음 이 가게가 연 때와 똑같이 ‘인터넷책방’일 뿐이요, 전국 곳곳에 연 매장도 ‘헌책방’이 아닌 ‘중고샵’이다.


  국어학자로 일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기도 한다면, 이녁을 가리켜 무엇이라 일컬을 만할까. 본업은 언제나 국어학자이면서 곧잘 사진을 찍는데, 사진이 무척 대단하다면 이녁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본업이 국어학자이면, 이녁이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만화를 그리든 국어학자이다. 사진가나 화가나 만화가이기 앞서 국어학자이다.


  교사와 부모 사이를 헤아려 보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교사 일을 한다고 할 때에, 이녁을 두고 무어라 불러야 올바를까. 교사에 더 무게를 두며 일하면 교사이면서 아이가 있는 사람이요, 아이에 더 무게를 두면서 교사 일도 함께 한다면 ‘아이 어버이로서 교사도 하는 사람’이다.


  헌책방은 헌책방이다. 복합문화공간은 복합문화공간이다. 헌책방 아닌 곳을 헌책방이라고 할 수 없다. 복합문화공간인 곳을 두고 헌책방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시장 박원순 씨는 서울시장이지, 변호사도 아니고, 참여연대 거시기도 아니다. 마땅한 노릇 아닌가? 그런데, 헌책방이 아닌데,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굳이 내세우면서 ‘헌책방 이미지’를 팔아서 이름을 알리려 하는 분을 보면 좀 쓸쓸하다. 헌책방 아닌 복합문화공간을 꾸리면서 구태여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할 까닭이 없잖은가. 이녁이 하는 그댁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쓰면 될 텐데. 왜 이름에 매달릴까. 왜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쓰고 싶을까. 헌책방 문화를 지키고 싶기 때문일까? 헌책방 일꾼들 삶을 북돋우고 싶은 뜻일까? 그러면, 부디 헌책방이라는 가게를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고이 이으면서 동네에서 조촐하고 조용하게 책빛 가꾼 어르신들한테 살며시 찾아가서 넌지시 말을 여쭈기를 바란다. 호떡장수는 호떡을 팔아서 호떡장수이지, 대형마트에서 호떡을 판대서 대형마트를 두고 호떡가게라 하지는 않는다. 4347.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