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여행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왔다. 1월 29일에 왔으니 이틀을 묵었고 사흘째 된다. 오늘은 설날이다. 나는 새벽 네 시 반부터 일어나 글쓰기를 조금 하고 차례상 올리는 일을 거든다. 큰아이는 일곱 시 오십 분쯤 지나 일어나고 작은아이는 여덟 시 반 무렵에 일어난다. 아이들 할아버지는 느즈막하게 일어난다. 작은아버지는 아무도 안 오신다. 어제도 안 오고 오늘도 안 온다. 문득 이야기를 들으니, 셋째 작은아버지네는 설날여행을 갔다고 한다. 둘째와 넷째 작은아버지네한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듯하다. 올해로 마흔 해째 맞이하는 설날인데, 내 아주 어릴 적에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이제까지 작은아버지네가 아무도 오지 않고 맞이하는 설날은 처음이지 싶다.
작은아버지네는 마흔 해 즈음 큰집에 찾아오는 일이 번거롭거나 성가시거나 귀찮거나 힘들거나 고단했을까. 마흔 해 즈음만에 비로소 말미(휴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제껏 차례상과 제사상을 늘 올리는 우리 어머니(큰집)는 언제쯤 말미를 얻을 만할까. 우리 아버지는 어릴 적에 큰할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갔다고 한다. 큰할아버지 댁에는 아들이 없어, 아들이 넷이던 우리 할아버지(작은할아버지)네 큰아이들은 우리 아버지 호적을 옮겼다고 한다. 이래저래 따지면 우리 아버지가 차례나 제사를 올려야 할 까닭이 없다고 하는데, 이제껏 언제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상과 제사상을 올린다.
작은아버지네가 가난하다면 설날여행을 안 떠났을까 궁금하다. 작은아버지네가 그리 넉넉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수한 살림이었으면 설날을 어떻게 보낼는지 궁금하다. 작은아버지네 아이들은 설날에 누리는 ‘한식구 나들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작은아버지네 아이들이 커서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지나며 쉰이 지난 뒤에, 이녁 어버이를 어떻게 모시거나 섬길는지 궁금하다. 오늘 나는 혼자서 술잔 나르고 젓가락 고르고 숟가락 놓고 술 붓는 심부름을 모두 도맡아서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그릇을 나르고, 아버지와 내가 둘이서 차례를 지낸다. 지내고 보니, 두 사람이서도 이럭저럭 할 만하구나 싶기도 하다. 4347.1.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