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 3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서야 <설희> 셋째 권 느낌글을 쓴다. 앞으로 여섯 권이 남았다. 다른 여섯 권 느낌글을 쓰는 동안 10권이 나오려나. 10권이 나오면 10권 느낌글부터 쓸까. 아니면, 다음에는 9권 느낌글부터 쓸까. 흠...

 

..

 

만화책 즐겨읽기 310

 


사랑이 있는 자리에
― 설희 3
 강경옥 글·그림
 팝툰 펴냄, 2009.4.23.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 앞에서는 어떤 것도 힘을 내지 못합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사랑을 힘이나 돈이나 이름으로 누를 수 있는 듯 여깁니다. 그뿐 아니라 참말 힘이나 돈이나 이름으로 사랑을 누르곤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힘도 돈도 이름도 사랑을 누를 수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누군가는 서른 해나 쉰 해쯤 뒤에 깨닫고,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못 깨달으며, 누군가는 이내 깨닫습니다.


- ‘세이도 설희 만나기 전에 이미 포기했고, 각자의 인생이 다를 뿐인 거야. 응.’ (26쪽)
- “뭐 이해는 하지만, 본인이 이 일을 좋아하면 그런 것쯤 문제도 아니잖아.” (33쪽)
- “넌 뭐 되고 싶은 거 없어? 꿈이라든지 어떤 일을 하고 싶다든지. 돈 많은 건 알겠는데, 그럴 돈이 있으면 무슨 공부나 뭐든 다 할 수 있잖아.” “꿈? 뭐, 꿈은 하나 있지만, 말할 만한 건 아냐.” (40쪽)

 


  가장 큰 힘은 사랑인데, 가장 작은 힘도 사랑입니다. 사랑으로는 어느 것도 못 이룰 듯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랑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 여기기도 합니다. 사랑만으로는 전쟁을 못 막고 독재정권을 쫓아낼 수 없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먹고살 수 없는 까닭은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스스로 먹고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먹고살지 못해요. 스스로 전쟁을 못 막는다고 여기니 그예 전쟁을 못 막습니다. 스스로 독재정권을 쫓아낼 마음이 없기에 독재정권을 못 쫓아냅니다. 힘이 있기에 전쟁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힘이 있어서 독재정권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힘이 아닌 사람들 마음으로 전쟁을 몰아냅니다. 힘이 아닌 사람들 넋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먹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헤아려 봐요.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면 쌀이 잘 되거나 배추와 무가 잘 될까요. 볍씨 한 톨에 사랑을 담고, 배추씨와 무씨 한 톨에 사랑을 실을 때에, 쌀과 배추와 무가 잘 될까요.


  우리가 돌보는 꽃나무를 헤아려 봐요. 쳐다보지 않고 아끼지 않으면 잘 자랄까요. 늘 바라보면서 어루만지고 아낄 적에 잘 자랄까요.


-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것도 선택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선택이지. 적당히 살아가는 것도 선택. 올바르다든가 올바르지 않다든가 그런 거 알아도 자신은 어쩔 수 없어. 폐인처럼 살다 뒈져도 자기 안에 바꿀 힘이 없으면 끝인 거야. 그저 자기 방식대로 주어진 결과대로 끝을 맺겠지.” (43쪽)
- ‘보면 볼수록 큰 집. 만약 이 큰 집에 내가 없다면 설희 혼자 산다는 걸까? 뭔가 되게 비현실적인 느낌. 하긴, 20년이나 외딴 섬에서 홀로 자랐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57쪽)

 


  제아무리 전쟁을 벌여도, 먹지 않으면 전쟁을 못 합니다.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전쟁터라 하더라도 잠을 안 자면 싸우지 못 합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싸움꾼이라 하더라도 옷을 입고 집에서 지내며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나무와 풀이 베푸는 푸른 숨결을 마셔야 대통령이고 군인이고 할 수 있습니다. 빗물과 냇물을 마셔야 소설가이고 운전기사이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도시사람이 99요 시골사람은 1밖에 안 되는데, 도시사람이 99.9가 되고 시골사람이 0.1이 되더라도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이 없으면 모조리 굶어죽을 뿐 아니라, 푸른 숨결과 맑은 물을 누리지 못합니다. 더욱이, 시골 논밭과 숲과 들을 푸르고 아름다우며 맑고 싱그럽게 돌보는 따사로운 손길이 없으면 아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농약이나 농기계가 흙을 일구어 주지 않습니다. 따순 손길이 흙을 일굽니다. 비료가 흙을 살리지 않습니다. 나뭇잎과 풀잎과 벌레와 새와 비와 바람과 햇볕이 흙을 살립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에 삶이 있습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자리에 삶이 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자리에 삶이 있습니다.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09) 셋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마음으로 품으며 살아가는지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삶이 즐거울까요. 돈이 없으면 삶이 힘들까요. 이름이 있으면 삶이 대단할까요. 이름이 없으면 삶이 따분할까요.


- ‘나 지금 불행한가? 자신의 처지에 조금의 자긍심도 못 느낄 만큼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59쪽)
- “가격표는 보지 마. 그게 약속이야. 원하는 것만 골라 봐.” (94쪽)
- ‘하지만 가격표를 보지 말라는 제의는, 그거 끌리네. 단지 원하는 것만을 본다는 거.’ (96쪽)

 


  마음에 드는 옷은 비깐 값을 치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님은 얼굴이 이쁘장하거나 몸매가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집은 부동산 값어치가 높기 때문이 아닙니다.


  백 살을 살기에 더 즐거울는지 궁금합니다. 아흔아홉 살을 살거나 여든아홉 살을 살면 덜 즐거울는지 궁금합니다. ㄱ대학교를 나왔거나 ㄴ대학교를 다니니 보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ㄷ고등학교만 마쳤거나 ㄹ중학교만 마쳤으면 보람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일곱 살 어린이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할까요. 다섯 살 어린이는 한글을 떼어야 할까요. 열네 살 푸름이는 영어를 뛰어나게 해야 할까요. 스물다섯 살 젊은이는 큰회사 사무직으로 뽑혀야 할까요.


- “그런 선물을 받는다면 사랑을 해 보고 싶어.” (106쪽)
- “하지만 뭔가를 원하는 욕구가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최대의 증거가 아닐까. 그것 때문에 힘내서 살 수도 있잖아.” “그 욕구 때문에 힘들거든요, 님하.” “그렇겠지. 그럼 모든 게 이루어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싶어?” (194∼195쪽)

 


  지팡이는 가게에서 살 수 있고,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천천히 깎아 만들 수 있습니다. 푸성귀는 가게에서 살 수 있고, 텃밭에서 거둘 수 있으며,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작은 꽃그릇에서 키울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라면을 사다 먹을 수 있고, 밀가루를 사서 반죽하여 손수 끓일 수 있으며, 밭에 밀씨를 심고 거두고 절구질까지 해서 밀가루를 얻은 뒤, 이렇게 얻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천천히 끓일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입니다. 다 다른 삶에는 다 다른 사랑이 피어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 길로 가야 참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착하고 너그러우며 따사롭고 맑을 때에 즐거운 사랑이 됩니다. 만화책 《설희》 셋째 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사랑뿐 아니라 스스로 나를 아끼는 사랑은 무엇인지 넌지시 들려줍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는 저 먼 곳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는 바로 내가 선 이곳입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를 다른 데에서 찾으려 하면 찾지 못합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는 바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느끼고 깨달으며 아낄 때에 곱게 빛납니다. 4347.1.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