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과 책

 


  아이들은 밥그릇을 놓고 다투지 않는다. 다만, 예쁜 밥그릇이 있으면 서로 차지하고 싶다. 그러니, 아이가 둘을 넘으면 똑같은 밥그릇을 아이들 머릿수대로 갖춘다. 다만, 똑같은 빛깔로까지 맞추고 싶지 않아 붉은 빛과 파란 빛으로 갖춘다. 처음에는 큰아이가 파란 그릇을 갖겠다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그동안 파란 꽃그릇 했으니 이제 빨간 꽃그릇 할래.”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는 빨간 꽃그릇을 누나한테 내줄 마음이 없다. 그러다 마침, 어머니 몫 그릇은 밥그릇과 국그릇 빛깔을 다르게 쓰는 모습을 깨닫는다. 동생더러 “보라야, 난 국그릇이 파랑이니까 너는 국그릇을 빨강으로 해. 난 밥그릇을 빨강으로 하고, 넌 밥그릇을 파랑으로 해.” 이렇게 하니 동생이 얌전히 따른다. 때로는 누나가 빨강 밥그릇을 쓰고, 때로는 파랑 밥그릇을 쓴다. 그날그날 바꾸어 본다.


  사이좋게 나누어 쓰기도 하지만,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는 두 아이가 개구지게 놀면서, 작은아이는 어느새 낮잠을 거르는 날이 있다. 그렇지만 누나만큼 힘이 닿지 않으니 저녁이 되면 이내 지쳐서 곯아떨어진다.


  두 놈이 같이 자면 한결 수월할 테지만, 한 놈이 자고 한 놈이 깨면 아이들 밥을 차려 주기 마땅하지 않다. 그렇다고 큰놈을 굶길 수 없으니 작은 밥상에 큰놈 몫을 차려서 준다. 큰놈이 밥을 다 먹을 즈음 작은놈이 늦은 낮잠에서 깬다. 큰놈이 먹던 밥상에 작은놈 밥그릇과 국그릇을 놓는다. 밥을 다 먹은 큰놈은 밥상맡에서 만화책을 펼친다. 작은놈은 누나가 무얼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늦은 낮잠에서 깨어나 한창 배고프다. 아무것도 안 쳐다보고 오로지 밥상에 척 붙어서 밥그릇 비우기에 바쁘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먹는다. 마음이 고픈 사람은 책을 읽는다. 꿈이 고픈 사람은 꿈을 키우고, 사랑이 고픈 사람은 사랑을 키운다. 아이가 읽는 책에는 어떤 빛이 있을까. 아이가 읽도록 어른들이 만든 책에는 어떤 빛이 서릴까. 어른들은 저마다 어떤 빛을 누리고 살면서 아이한테 어떤 빛을 마음밥으로 내줄까.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