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가시나무에도 겨울눈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간다. 아이들이 하도 가고 싶다 말하니 마지못해서 간다. 놀이터는 좋지만, 학교는 달갑지 않아 딱히 가고 싶지 않다. 시골에 있는 학교조차 나무를 아무렇게나 베거나 비틀거나 괴롭히기 때문이다. 우리 보금자리 있는 시골하고 가까운 초등학교에서도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자르고 나뭇잎을 아무렇게나 자른다. 이른바 ‘조경’과 ‘정원’과 ‘원예’라는 이름을 들이밀면서.


  고맙게도 아이들은 학교나무를 쳐다보지 않는다. 어쩌면 흘깃흘깃 보았을 수 있겠지.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닐 적에 옆에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갈 적마다 배기가스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고 느끼니까, 나무가 아파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지 않으리라 본다.


  모양을 낸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고 자르고 다듬었다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다가, 가시나무 잘린 가지 한쪽에 돋은 겨울눈을 본다. 너는 용케 남았구나. 아니, 잘린 가지 끝에서도 너는 씩씩하게 겨울눈 내밀었구나. 이 겨울눈에서 곱게 새빛 베풀 테지.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을 부르겠지. 이 시골학교 어른들조차 너희들 고운 새빛을 깨닫지 못하는 나머지 새봄에 또 너희들을 마구 가지치기 할 텐데, 이곳 어른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이곳 아이들이 부디 제대로 깨달아 나무가 아프게 하는 일이 사라질 수 있기를 빈다.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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