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쓰는 넋
동화란 무엇일까요.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웃음과 눈물을 듬뿍 쏟아내게 이끄는 동화나 문학을 읽으면서 가슴이 후련하다고 느낍니다. 웃고 울면서 기쁘게 누리는 동화나 문학을 즐기면서 마음속에서 사랑이 자란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지구별에는 아직 전쟁이 있어요. 서로 죽이고 죽는 짓이 끊이지 않아요. 동화와 문학에서도, 영화와 연속극에서도, 만화와 그림책에서도, 치고받으며 다투거나 괴롭히거나 할퀴는 이야기가 흘러요. ‘현실은 이렇다’ 하고 말하면서 자꾸자꾸 ‘현실 보여주기’만 한다고 덧붙여요.
그러면, 그러면 말입니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꿈은 이렇다’ 하고 말하면서 한결같이 ‘꿈 들려주기’로 나아가는 동화나 문학은 나올 수 없을까요. 아프거나 괴롭거나 슬프거나 못나거나 짓궂은 현실에서만 맴돌지 말고, 삐삐처럼 호빗처럼 앤처럼 코난처럼 아톰처럼 밍키처럼, 꿈을 맑고 밝으면서 환하게 지필 수 있는 이야기를 동화나 문학으로 빚을 수 없을까요.
책보다 놀이를 말하고, 숲과 들을 말하며, 어른과 함께 일하고 놀며 삶을 짓는 하루를 짚고 이야기하는 비평을 선보였던 이오덕 님을 곰곰이 떠올립니다. 아이들한테 꼭 동화를 읽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삶이라면,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없어도 됩니다. 아이들이 숲과 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돌보는 삶 누린다면, 영화나 연속극은 없어도 됩니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일하고 놀며 삶을 지을 수 있으면, 만화책 하나 없더라도 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동화쓰기’는 어렵지 않다고 느낍니다. ‘동화읽기’도 어렵지 않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동화란, 어린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사랑을 그리는 이야기이거든요. ‘동화쓰기’가 어려울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싱그럽게 놀며 일하는 어른은, 동화를 ‘쉽게’ 써요. 아이와 놀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좋은 작품 선물’하려는 마음이라면, ‘창작’을 하거나 ‘문학’을 한달지라도 즐겁게 웃지 못합니다. 아름답게 노래하지 못합니다. 즐겁게 누리는 삶처럼 즐겁게 쓰고 읽으며 나누는 동화요 이야기이며 문학입니다.
문학강좌를 듣거나 창작강의를 듣거나 대학교를 다니면서 동화를 쓰거나 읽으려는 분이 나오지 않기를 빌어요. 아이와 사귀고, 아이와 놀며,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면서, 삶 그대로 동화를 쓰고 읽으며 웃는 어른이 차츰 늘어나기를 빌어요. 글솜씨가 어리숙할 수 있어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틀릴 수 있어요. 아이들은 설거지를 거들다가 접시나 그릇을 깰 수 있어요.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질 수 있어요. 그런데, 놀다가 무릎이 깨져야지요. 어른들이 마구 모는 자동차에 받혀 다치지는 말아야지요. 어른들이 저지르는 전쟁과 막개발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프지는 말아야지요.
동화를 쓰는 넋은 삶을 사랑하는 넋이라고 느껴요. 동화작가 스스로 일구는 삶이 동화작품에 고스란히 스민다고 느껴요. 동화작가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빛이 동화작품에 시나브로 깃든다고 느껴요. ‘좋거나 착한 이야기’만 동화로 써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 길에서, 아이와 어떤 삶을 일구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꿈과 사랑과 노래를 담아야 비로소 ‘동화가 된다’고 느껴요.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