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들

 


  흔히 ‘빈들’이라 하는 겨울들이다. 나락이 없어 ‘빈’들이라 하는데, 겨울들에는 나락이 없을 뿐, 수많은 숨결이 깃들어 조용히 쉰다. 사람들 눈썰미로는 나락을 베어 없다고 할 만하지만, 다른 풀싹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려 하고, 온갖 풀씨가 이곳에 날아와 조용히 겨울잠을 잔다. 봄부터 가을까지 질퍽질퍽한 흙이 되어 나락을 보듬는 논이요 들인데, 물이 찰랑이는 논에서 다른 풀씨가 살아남기는 어렵지만, 겨울 거치고 봄이 오기까지 갖가지 들풀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어느새 씨앗까지 날리곤 한다. 풀씨는 논흙에서 가을걷이 끝나고 겨울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을까. 가을걷이를 마칠 무렵 논둑이나 밭둑이나 다른 들에서 풀씨가 날아와 살며시 깃든 뒤 겨울이나 봄에 활짝 피어나거나 돋을까.


  나락을 벤 들은 누르스름한 겨울빛이다. 처음에는 누런 빛깔이지만 비와 눈과 바람과 햇볕에 바래면서 차츰 희뿌연 빛깔로 달라진다. 볏모가 여름 지나 가을 되는 동안 빛깔이 달라지듯이, 빈들도 한겨울로 접어들면 새로운 빛깔이 된다. 날마다 살짝살짝 새로운 빛이 드리우는 들판에 선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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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1-15 09:09   좋아요 0 | URL
'빈들'이라는 말을 읽으니 어렸을 때 무턱 좋아했던
테너 엄정행 님의 '고향의 노래'가 다시 생각나 듣고 있습니다~

숲노래 2014-01-15 12:06   좋아요 0 | URL
'빈'들이란 없지만,
어쨌든 '빈들'이라는 낱말 느낌이
참 곱다고 느껴요.
그리고 '겨울들'도 그렇고요.
오늘도 따사로운 햇볕이 우리 나라 골고루 내리쬐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