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열매 책읽기
고흥에 깃든 뒤 치자꽃을 처음 보았다. 아니, 다른 데에서도 치자꽃을 보았을 수 있으나, 다른 데에서는 치자꽃인지 아닌지 모르며 살았다. 마을에서 치자꽃밭 돌보는 할배가 한 분 있고, 면소재지 언저리에 치자나무 돌보는 할배가 한 분 있다. 이 옆을 지날 적마다 치자나무를 들여다보고 치자잎과 치자꽃을 늘 마주한다.
그동안 치자열매는 제대로 눈여겨보지 못했다. 고흥살이 여러 해만에 드디어 치자열매를 제대로 바라본다. 치자열매가 이런 빛이었네. 치자열매를 만지니 이런 느낌이었네. 치자열매한테서 이런 냄새가 흐르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코로 맡는다. 살갗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찬찬히 헤아린다. 이 시골에서 오래도록 살아오며 치자를 곁에 둔 할매와 할배는 그동안 어떤 빛과 냄새와 무늬와 맛을 맞이했을까. 치자열매를 만진 손에는 어떤 빛과 냄새와 무늬가 스몄을까.
기름밥 먹는 일꾼 손에서는 기름내음이 난다. 치자꽃 만지는 일꾼 손에서는 치자내음이 나겠지. 흙일꾼 몸에서는 흙내가 감돌 테고, 물일꾼, 그러니까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 몸에서는 물내음이나 바다내음이나 소금내음이 감도리라 느낀다. 먹는 밥이 삶이 되고 몸이 된다. 맞이하는 바람이 숨결이 되고 넋이 된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