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12.
: 못물 얼어붙는 고흥 겨울
- 수레바퀴 튜브를 갈았다. 이제 아이들과 마실을 갈 수 있다. 날은 춥지만 옷을 두툼하게 입히고 길을 나선다. 모자와 장갑을 모처럼 갖춘 아이들이 마당과 고샅을 달리면서 논다. 너희는 자전거를 타건 말건 그저 놀면 다 좋지?
- 지정마을 쪽으로 올라간다. 천등산 줄기 쪽으로 올라갈까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힘이 벅차다 싶어 못 옆에까지만 간다. 우리 마을과 지정마을 사이에 있는 못물을 바라본다. 반쯤은 물이 살짝 얼었다. 물이 얼지 않은 쪽에 오리 한 무리 노닌다. 이렇게 못물이 어는 날에도 물에 내려앉아 헤엄치며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면, 참말 이원수 님 동시에 나오듯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하는 노래가 터져나온다. 참말 너희는 괜찮지?
- 서재도서관에 살짝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신기마을 논둑길을 달리기로 한다. 신기마을 어귀 염소우리 옆을 지나가는데, 흰개가 우리를 따라온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말한다. “아버지, 하얀 털 멍멍이가 우리를 따라와! 왜 따라와?” “왜 따라올까? 우리하고 놀고 싶은가 봐.” 원산마을 논배미를 지나 호덕마을로 접어들 때까지 흰개가 우리 자전거 옆을 나란히 달린다. 참말 심심해서 우리하고 나란히 달렸겠지?
- 호덕마을 둘레를 따라 달리다가 고인돌 여럿 있는 옆을 지나가는데 길이 질퍽질퍽하다. 날이 이리 추운데 이 길은 어인 진흙길? 지난해까지 흙도랑이던 곳을 어느새 시멘트도랑으로 바꾼 모습을 본다. 시골에 살며 늘 보아야 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시멘트도랑을 문화나 문명이나 복지로 여겨야 할까? 흙도랑을 없애면 시골살이 나아진다고 여겨야 하는가?
- 작은아이가 수레에서 잠들 줄 알았으나 잠들지 않는다. 거의 보름만에 탄 자전거라서 잠들고 싶지 않으려나. 그러나 동오치마을 지나 면사무소에 닿을 무렵, 드디어 작은아이가 잠든다. 면소재지 가게에서 자전거를 세우니 큰아이가 “아버지, 보라 잠들었어요.” 하고 말한다. “응, 나도 알아.” 가게에서 솜사탕을 보고는 사 달라고 조른다. 얘야, 너 이렇게 졸라대려면 자전거 타지 말자.
- 다시 자전거를 타기 앞서, 큰아이는 벙어리장갑을 하늘로 휙휙 던지면서 논다. 이제 집까지는 맞바람을 먹으며 달리는 길이다. 면소재지 벗어날 무렵, 마을 할매들이 “하나는 뒤에서 자고 하나는 앉고 가고, 좋겠네.” 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귓결로 듣는다. 면소재지에서 벗어난 뒤, 불긋불긋한 열매가 보여 자전거를 멈춘다. 그래, 치자 열매로구나. 하얀 치자꽃이 불그스름한 열매를 맺네. 가까이 다가서서 사진을 찍는다. 곁에는 새롭게 여린 줄기를 내놓는 찔레가 있다. 가시가 잔뜩 돋은 새 줄기이지만, 이 줄기가 보드랍다면서 봄날 ‘찔레싹’을 꺾어서 먹은 우리 어매들이고 아배들이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찔레싹은 돋는다. 찔레싹을 꺾어서 먹을 시골사람 없지만, 찔레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자란다.
- 땔감을 잔뜩 실은 경운기를 본다. 큰아이는 경운기 모는 할배한테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바람이 모질게 부니 큰아이가 춥다고 말한다. 거의 다 돌아왔지만, 자전거를 세운다. 겨울들 사진을 한 장 찍는다는 핑계로 몇 분쯤 쉰다. “벼리야, 춥지? 모자 바로 쓰고 옷 잘 여미어. 그러면 다시 간다.” 겨울에는 겨울바람을 먹으면서 자라지. 여름에는 여름볕 먹으면서 자라고. 이 겨울도 씩씩하게 나면서 네 몸에 새로운 빛을 가득 담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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