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망한 생 문학.판 시 15
박상우 지음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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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말하는 시 44

 


시와 벼랑
― 이미 망한 生
 박상우 글
 열림원 펴냄, 2007.9.3.

 


  고구마를 익힙니다. 흙을 맑은 물로 헹군 뒤 냄비에 불을 아주 작게 올립니다. 냄비를 천천히 달구는 동안, 고구마 곪은 자리를 칼로 도려냅니다. 얼마쯤 걸리려나. 이제껏 냄비에 고구마를 천천히 익힐 적에 으레 한 시간 즈음 걸렸습니다. 스텐냄비에 물 없이 작은 불로 달구어 익히면, 퍽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물로 삶을 적하고는 견줄 수 없이 새로운 맛이 나요. 한 시간 즈음, 때로는 한 시간 남짓 고구마를 익힐 적에 감자를 함께 익히기도 하고, 달걀을 함께 익히기도 합니다. 이때에도 물로 감자를 삶거나 달걀을 삶을 적에는 볼 수 없는 맛이 있어요.


  네 살 작은아이가 자꾸자꾸 아버지를 채근합니다. “아버지, 언제 먹어요?” “고구마 냄새 나!” 하고 잇달아 말합니다. 아직 덜 익었으니 기다리라 하면, “왜 안 먹어?” 하면서 우는 얼굴이 됩니다. 얘야, 기다려야 한단다, 고구마를 삶거나 감자를 삶거나, 찬찬히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야 맛나게 익거든.


  국을 끓여 국부터 마시라고 하니 작은아이는 싫다 합니다. 고구마 익는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집니다. 얼른 고구마를 먹고 싶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줄 생각하지 못합니다. 덜 익은 고구마를 그냥 꺼내서 줄까 하다가, 아무래도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보채더라도 잘 익은 고구마를 주어야지요. 달래고 또 달래면서 기다리도록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만화책을 보면서 씩씩하게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자, 이제 먹어라.” 하고 부르니 두 아이는 밥상맡에 앉아 신나게 먹습니다. 조금 더 익혀서 아주 맑은 노란빛이 빛날 적에 주고 싶지만, 아이들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다른 때에 주던 달고소한 고구마를 건네지 못합니다.


.. 내 마음은 몇천 년 전 인간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 스스로 축복을 내리노라 / 내 마음은 聖賢들의 마음과 같다는 것에 대하여 ..  (서시, 단세포 동물)


  익힌 고구마를 아이들 밥그릇에 담아서 내놓았습니다. 나도 함께 먹을까 하다가 나중에 먹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고구마가 맛있어서 더 달라고 할 수 있어요.


  가만히 지켜봅니다. 생각대로 두 아이 모두 고구마를 더 달라 합니다. 한 번 더 주고, 두 번 더 줍니다. 참말 내가 먹을 몫을 남겨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 빙그레 웃으며 내어줍니다. 너희들 다 먹어도 돼. 너희들 배불리 먹고 씩씩하게 놀 기운 얻으면 돼.


  어느 어버이라 하든 아이들 맛나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부르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삶을 살찌우는 빛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 내 마음에는 / 세상의 잡것들이 들어갈 수 있는 호리병이 있어 / 무엇이든지 들어오면 / 빠져나가기 힘듭니다 ..  (76쪽)


  삶을 살찌우는 빛처럼, 삶을 무너뜨리는 힘도 우리 곁에 있을까요. 아무래도, 모든 빛과 힘은 우리 둘레에 있겠지요. 스스로 삶을 살찌우고, 스스로 삶을 무너뜨려요. 남이 내 삶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남이 내 삶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싹트는 이야기로 삶을 살찌우고, 내 마음에서 끄집어낸 넋으로 삶을 흔들거나 무너뜨립니다.


  박상우 님 시집 《이미 망한 生》(열림원,2007)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진 삶이라면, 나 스스로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싱그러이 숨쉬는 삶이라면, 나 스스로 어느새 싱그러이 숨쉬기 때문입니다.


  박상우 님은 왜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진 삶을 노래할까요. 박상우 님 둘레에서 마주하는 삶이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졌기 때문일까요. 박상우 님 스스로 이녁 삶이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졌기 때문일까요. 망가지거나 무너진 삶은 누가 일으켜세울까요. 망가지거나 무너졌으니 그대로 두기만 하면 될까요.


.. 우리 집 마당의 앵두나무는 / 올해도 꽃이 피고 / 열매를 맺었다 ..  (태치갈리아)


  당근토막을 접시에 놓고 물을 조금 부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새 잎이 돋습니다. 물을 꾸준히 주고 볕좋은 자리에 놓으면 당근잎이 쑥쑥 오릅니다.


  나무는 줄기가 잘려도 새 가지를 내놓습니다. 추위가 닥쳐 잎을 모두 떨구어야 해도, 추위가 수그러드는 봄이 찾아오면 새잎을 다시 내놓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생채기가 난대서 언제나 아픈 채 살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모르거나 못 느끼는 사이에 생채기가 아뭅니다. 생채기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습니다. 생채기가 아물어 딱지가 지지 않으면, 어느 사람이든 죽고 말아요. 죽지 않고 살아가는 까닭은 생채기가 아물어 딱지가 지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 똥을 눕니다. 똥을 누고 나서 밥을 먹습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한 해가 지납니다. 나이를 먹고, 삶을 이룹니다. 꿈을 펼치고, 사랑을 나눕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 들판과 숲과 마을에서 풀이 돋고 나무가 꽃과 잎을 틔웁니다.


  벼랑 끝에서도 풀이 자라고 나무가 뿌리를 내립니다. 풀과 나무는 어디에서도 벼랑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어디에서도 풀과 나무 스스로 자라거나 살아갈 터라고 느낄 뿐입니다. 사람한테도 벼랑은 따로 없다고 느껴요. 도시에 살기에 더 낫지 않고, 시골에 살기에 덜 떨어지지 않아요. 한복판에 있기에 훌륭하지 않으며, 구석이나 끄트머리에 있기에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쓰기에 따라, 한복판도 벼랑이요 벼랑도 한복판입니다.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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