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님 책 느낌글

 


  김광석 님 책을 읽는다. 김광석 님이 남긴 글조각을 묶었다고 한다. 글조각은 얼마 안 되는데 빈자리를 무척 많이 두었다. 양장을 퍽 두껍게 했다. 떠난 이를 기리는 뜻이라 이렇게 했으리라 싶으면서도, 작고 도톰하게, 살가우면서 앙증맞게 엮을 수 있었으리라 느낀다. 짤막하게 쓴 글이 많은 만큼, 빈자리를 넓게 두기보다는 훨씬 자그마한 판과 가벼운 책으로 꾸며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애틋하게 되새길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았으랴.


  글이 짧아 퍽 빨리 읽고 덮는다. 다 읽은 책을 덮고 나서 무언가 허전하다. 무엇이 허전했을까.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가기 앞서, 여관에서 기차때를 기다리며 김광석 님 책 느낌글을 쓴다. 느낌글을 쓰다가 비로소 가슴에 쨍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김광석 님이 한창 노래잔치를 열다가 어느새 이슬이 된 그무렵, 나는 신문배달을 하던 ‘대학교 자퇴를 하려고 생각하던’ 젊은이였고, ‘대학교 엉성한 교육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군대에 들어가 뒹굴던’ 숨결이었다. 아버지가 커다랗게 틀어놓은 텔레비전에 자막으로 김광석 님 마지막 이야기가 흘렀는데, 그때는 내가 군대에 들어가 훈련소에서 받은 연대장 표창장에 딸린 휴가증을 갖고 며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스치듯이 텔레비전 자막으로 짧은 이야기를 읽었고, 이튿날 다시 군대로 돌아가서 지오피에 여섯 달 처박혔다. 김대중 님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군대 간부들이 반란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1997년 12월 31일에 전역을 했고, 국제통화기금 찬서리가 내린 서울에서 다시 신문배달을 하며 이태를 살았다. 이동안 김광석 님 노래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고, 새벽에 신문을 돌리면서 목이 터져라 부르곤 했다.


  느낌글을 쓰다가 그무렵 그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런 이야기가 나한테 있었구나.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대학교라는 데에 왔지만, 막상 이 대학교에서 선배라는 이들이 후배를 때리고 얼차려 주고 머리박기 시키고 허구헌날 술만 퍼먹이고, 교수나 강사라는 이들은 시간때우기만 하고, 도서관에는 소설책과 토익책만 가득하고, 대학교 앞 책방은 장사가 안 되어 하나둘 문을 닫고, 동무들은 선배를 깎듯이 모시기만 하면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다가 곳곳에 웩웩 게우고, 이런 틈바구니에서 괴로워 대학교란 데를 때려치우자고 생각하던 마음에 김광석 님 노래가 조그맣게 빛줄기가 되었지. 〈이등병의 편지〉가 담긴 테이프를 몰래 군대로 가지고 와서, 군대에서 나를 살가이 아끼던 고참과 후배한테 빌려주며 모포를 뒤집어쓰고 눈물 적시며 들었지.


  빛이 있기에 빛이 퍼지고, 빛이 있어 빛을 포근하게 안는구나.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4-01-04 13:4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이 나왔을 때 관심이 있었는데 너무 고급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객의 책이니 허접하게 만드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죠.
하지만 너무 비싸게 만드는 것도 상술이란 점을 배제할 수 없으니
적당한 상한선은 있었어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즉 사람과 독자를 연결 시켜준다는 좀 더 고상한 목표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김광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을 샀을 것이고, 앞으로도 사겠죠?

숲노래 2014-01-04 18:02   좋아요 0 | URL
'고급'으로 만들었다기보다
'품위 아닌 품위'를 갖추려 하다 보니
껍데기가 부풀려졌구나 싶어요.

예쁘게 꾸미는 일과
고급으로 하는 일은
좀 다르잖아요.

왜 더 김광석 님 노래와 삶과 이야기를
헤아리지 못했나 싶어요.

생각해 보면,
김광석 님 음반을
적어도 1000번쯤이라도 들었으면
책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