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전주 사이 6만 원
지난밤에 잠을 잘못 잤는지 아침부터 어질어질하다. 이런 몸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세 시간 반을 달리니 머리가 뜨겁다. 다리가 풀린다. 안 되겠구나 싶어 아무것도 안 먹으려 했지만, 서울에서 뵌 출판사 사장님하고 낮밥을 함께 먹는다. 그러고는 서울 성산동에 커피집을 새로 연 사진벗님 가게로 가서 차를 한 잔 마신다. 이제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사진벗님이 예쁘고 달콤해 보이는 케익 한 조각을 선물로 주시지만, 손을 댈 수 없다. 오미자차도 한 잔 주시지만 뱃속에서 들여보내지 말라고 외친다. 이때부터 자정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이마를 짚고 부글부글 끓는 아랫배를 쓰다듬는다. 결리고 쑤시며 저린 팔과 다리와 무릎과 팔목과 어깨와 옆구리를 차근차근 주무른다. 드러눕고만 싶지만, 한글문화연대에 모인 분들과 서울시 공문서를 손질하며 가다듬는 이야기를 네 시간 남짓 주고받는다. 아, 어떻게 네 시간을 이렇게 견디면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일을 마치고 나서 몸이 너무 힘들어, 가까운 여관을 알아보고는 곧바로 드러누우러 가고 싶은데, 오늘은 마침 금요일이다. 작은 여관조차 육만 원을 부른다. 어떻게 할까. 그냥 서울에 있는 여관으로 갈까. 손전화 기계로 기차표를 살펴본다. 저녁 아홉 시 십오 분 고속기차 하나 있고 자리도 하나 남았다. 오늘 저녁에 다른 기차는 없고, 내일은 첫 차부터 마지막 차까지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덜덜 떨리는 고속버스에서 시달리며 머리와 배가 아프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기차표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적어도 전주까지는 가자. 서울 여관은 너무 비싸니, 전주 여관은 3만 원에 묵을 데 있겠지. 전주까지 오면, 고속기차 입석으로 가든 시외버스로 두 시간 반을 달리든 순천까지 갈 수 있다.
용산역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려 기차를 탄다. 고속기차는 무궁화 기차보다 덜 떨리고 조용하다. 괜찮네. 이만 하면 기차로 탈 만하네.
두 시간 남짓 죽은 듯이 기차를 달려 전주역 닿는다. 히유 한숨을 돌리며 내린다. 가방을 짊어지고 여관골목을 걷는다. 전주역 앞은 술 마시며 노래하는 가게가 무척 많다. 너무 낯부끄럽다 싶은 이름을 붙인 여관이 있다. 아무리 여관이라 하더라도 어쩜. 3만 원을 치르고 여관으로 들어온다. 웃옷과 양말과 머리띠를 빨래한다. 고무신도 빤다.
따스한 물로 씻고 머리를 감는다. 살짝 살아나는구나 싶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러나 더 마실 수 없다. 이마를 짚고 쉰다. 자자. 일찍 자고 느긋하게 일어나자. 너무 일찍 일어날 생각은 말고, 몸을 살려서 시골집으로 돌아가자.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