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미네골 : 중국 조선족 설화 ㅣ 재미마주 옛이야기 선집 1
재미마주 편집부 엮음, 홍성찬 그림 / 재미마주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4
재미있는 마을이란
― 재미네골
홍성찬 그림
중국조선족 설화
재미마주 펴냄, 1999.12.20.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린 《재미네골》(재미마주,1999)은, 책이름 그대로 “재미난 고을” 이야기입니다. ‘골’은 ‘고을’을 가리킵니다. ‘고을’은 ‘마을’보다 큰 곳을 가리키는데, ‘골’이라고 쓸 적에는 ‘밤골’이나 ‘솔골’이나 ‘감골’처럼 여느 마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마을이름이 ‘재미골’이나 ‘재미말’이나 ‘재미마을’ 아닌 ‘-네’를 넣은 ‘재미네골’이었을까요. 그림책에서는 이 대목까지 낱낱이 알려주거나 다루지 않습니다. 아무튼, 마을사람 모두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재미나게 살아갔다고 하니, 이런 이름을 얻었겠지요.
.. 이 마을은 아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마음씨가 곱고 착해서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네 일 내 일 따로 없이 서로 도왔습니다 .. (5쪽)
재미있는 마을이란 남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면 어디나 재미네골입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군대를 두면 평화를 지킬까요? 아니에요. 군대가 있대서 평화를 지키지 않아요. 재미네골에는 싸울아비란 한 사람도 없어요. 칼을 차거나 창을 들거나 총을 거머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군인도 없지만 경찰도 없어요. 정보요원도 경호원도 없습니다. 모두들 너그럽게 웃고 따사롭게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군대나 전쟁무기에 들일 돈이나 품이나 겨를이란 없습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데에 모든 마음과 힘을 쏟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두거나 전쟁무기를 만드는 곳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는 웃음이 없습니다. 웃음이 없는 곳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곳에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랑이 없어요.
서로 아끼려는 삶이라면 칼이나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도둑이 있을 턱이 없겠지요. 굳이 대문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겨울에 부는 드센 바람을 막으려고 울타리를 쌓거나 울타리가 될 나무를 심을 뿐, 누구나 스스럼없이 이웃으로 드나듭니다.
서로 아끼면서 살아가니 애써 멀리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레 살아가는데 무슨 좋은 구경이 있다고 멀리 나다니겠어요. 하늘을 누리고 햇볕을 즐기며 바람과 냇물하고 사이좋게 얼크러집니다. 냇물에서 참방참방 물장구를 쳐요. 들판에서 해바라기를 해요. 숲에서 나물을 캐고 새소리를 들어요.
.. 콩밭의 김을 매고 있던 농부가 무슨 일인지 까닭을 알고 나더니 “여기 네 분은 모두 마을에 꼭 필요한 분들이에요. 농사야 누구나 배워 가면서 지으면 되니 제가 가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농부의 말에 부락장, 목수, 대장장이, 토기장이는 “하늘과 바람의 뜻에 따라 땅을 가꾸어 우리 마을 창고를 늘 풍성한 곡식으로 채워 주는 농부님이야말로 이 마을의 보배지요. 어디를 가시겠다고 그러세요.” 하고 입을 모았습니다 .. (16쪽)
그림책 《재미네골》을 보면, ‘부락장’이니 목수이니 대장장이이니 토기장이이니 하고 나옵니다. 여기에 농사꾼이 따로 나옵니다. 그런데, 시골마을에는 따로 ‘농사꾼’이 없어요. 목수나 대장장이나 토기장이도 함께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지을 겨를이 없이 목수질 하지 않아요. 농사를 안 지으며 대장장이나 토기장이를 하지 않아요. 어느 한 가지만 하는 시골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조금씩 흙을 일구어요. 저마다 틈틈이 밭을 돌보지요.
모내기철에 모내기를 함께 안 하는 목수나 대장장이란 없습니다. 가을걷이철에 가을걷이를 함께 안 하는 ‘부락장’이나 토기장이란 없습니다. 목수 일이나 대장장이 일은 여느 때에도 으레 하겠지만, 겨울과 봄에 훨씬 많이 합니다. 일철이 아닐 적에 이 같은 일을 훨씬 많이 하지요. 일철에는 다른 시골사람과 함께 흙일을 합니다.
그리고, ‘부락장’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맞갖지 않습니다. ‘부락(部落)’이라는 일본말을 중국조선족도 쓸는지 모릅니다만, 이 그림책은 중국조선족이 쓰는 ‘조선말’로 엮지 않았어요. 남녘에서 쓰는 말로 손질했어요. 그러면, 일본말 ‘部落長’을 ‘마을지기’나 ‘마을 어른’쯤으로 고쳐서 써야 올바릅니다. 우리 겨레 옛삶이나 우리 겨레 아름다운 살림살이를 보여주려 하는 그림책이니, 낱말 하나와 토씨 하나와 말투 하나까지 옹글고 알차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꼭 이 그림책에서 따질 낱말은 아니지만, 시골사람은 스스로 ‘농부(農夫)’라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시골사람’이나 ‘시골내기’라 말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모두 시골사람이었으니 ‘시골’이라는 말도 잘 안 썼어요. 그러면 무어라 했느냐 하면 ‘흙 만지는 사람’이나 ‘흙 가꾸는 사람’이나 ‘흙 일구는 사람’이나 ‘흙일 하는 사람’이나 ‘흙 먹는 사람’처럼 ‘흙’을 말했습니다. ‘농부’라는 이름은 흙을 안 만지는 양반이나 권력자가 흙을 만지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썼습니다.
.. 이웃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엔 언제나 재미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며 ‘재미네골’이라 불렀답니다 .. (29쪽)
재미네골은 중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북녘에도 남녘에도, 사할린에도 일본에도 동남아시아에도 어디에도 있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넋일 때에는 어디에서나 재미네골입니다. 서로 아끼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어디에서나 싸움터가 됩니다.
오늘날 이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아침저녁 출퇴근길이 지옥과 같다고들 말합니다. 교통지옥이라 하지요. 그리고, 아이들은 입시지옥이에요. 입시지옥을 거친 아이들은 취업지옥에까지 시달립니다. 모두 지옥구덩이예요. 어디나 지옥투성이예요. 아름다운 삶이나 즐거운 삶은 아무 데나 없는 듯합니다. 고운 삶이나 착한 삶은 도무지 안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들은 왜 지옥불에 빠져 허덕여야 할까요. 우리들은 왜 웃음이 아닌 미움으로 치달아야 할까요. 우리들은 왜 서로 돕거나 아끼기보다는 내 밥그릇만 챙기려 애써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지옥이 아닌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몰지 말고 따사로운 마을에서 놀며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기를 빌어요. 아이도 어른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환하게 웃는 삶 누리기를 빌어요. 4346.1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