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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페달을 밟고 ㅣ 창비시선 175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8년 5월
평점 :
시를 말하는 시 43
시와 자전거
― 꿈의 페달을 밟고
최영미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8.5.10.
동짓날이 지나갑니다. 섣달에 태어난 나는 동짓날이 지나가면 바야흐로 새롭게 한 해가 열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설날이 새해 첫날이 될 테고 양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여길 만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동짓날부터 새로운 해라고 여겼어요. 깊디깊은 밤은 동짓날로 저물고, 차근차근 낮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새벽이 조금씩 빨리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 혁명은 이제 광고 속에만 있다 / 춤추는 두 글자가, 옆자리 신문을 훔쳐보는 / 당신의 가슴에 폭풍을 일으킨다 / 앞만 보고 질주하는 속도에 맞서 자폭하고픈 .. (지하철에서 : 노란 10월)
동짓날이 오기까지 밤이 얼마나 길어지는가 하고 살핍니다. 어릴 적에는 시계와 창밖을 갈마들어 바라보면서 때를 헤아렸어요. 나이가 든 뒤에도, 군대에서도, 골목동네에서도, 시골에서도, 언제나 하늘과 해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해가 비스듬하게 누워 대청마루로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느낍니다.
오늘날 여느 아파트나 빌라에서는 햇살을 새삼스레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도 오랜 흙집이나 기와집에서 살며 처마 밑 그늘이나 마루에서 낮을 누린다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따라 햇살이 어떻게 다른가를 느낄 수 있어요. 참말 여름에는 해가 높아 처마 안쪽으로 빛살이 스미지 않습니다. 참말 겨울에는 해가 낮아 처마 안쪽으로 깊이 빛살이 스밉니다.
그러니까, 흙집 지어 처마를 댄 우리 옛사람은 겨울에는 햇볕을 듬뿍 집안으로 들이고, 여름에는 햇볕이 처마에 걸려 마루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않게 했어요.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 만합니다. 옛날 흙집은 처마 위로 흙과 짚만 있었으니 구렁이가 곧잘 슬슬 기어들어 알을 낼름낼름 집어삼키기도 했을 텐데, 구렁이를 빼고는 햇볕을 가리고, 사람들이 다른 큰 새나 짐승 해코지를 가려 주거든요. 그리고, 제비가 있어야 파리도 모기도 주는 한편, 나비와 애벌레와 풀벌레도 꽤 잡아먹어요. 애써 농약을 치지 않아도 제비가 말끔히 치워 준다고 할까요.
.. 당신과 그가 똑같은 옷을 입고 / 똑같은 목소리로 / 같은 말을 해도 .. (권위란)
아이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겨울볕 듬뿍 쐽니다. 바람이 모질게 불면 마루에서 뛰놀고, 바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마당에서 뛰놉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마당에서 뛰놀던 큰아이가 문득 “우리 집 마당이 더 넓으면 좋겠다” 하고 말합니다. 제가 뛰놀기에 이제 우리 집 마당이 좁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래, 네 아버지도 우리 바로 웃집을 장만해서 웃집에 일산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시면 좋겠고, 우리 집과 웃집 마당을 넘나들며 너희가 뛰놀 수 있으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한단다. 얼마나 재미있겠니. 두 집 마당이 너희 놀이터 되고, 나무도 타고 흙땅에서 뒹굴면서 놀면 얼마나 신나겠니.
아이들한테는 자동차 아닌 들이 배움터 노릇을 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는 학교 아닌 숲이 놀이터 구실을 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는 텔레비전 아닌 새와 나비와 풀벌레가 동무 몫을 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는 손전화나 과자나 플라스틱 장난감 아닌 하늘과 냇물과 바람과 해와 별이 이웃이 된다고 느껴요.
회사원 되는 길을 걸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졸업장 거머쥐어 도시에서 일자리 찾아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이름을 두루 떨쳐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전쟁무기 손에 쥐어 거짓스런 ‘국방 의무’를 짊어져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참된 나라사랑이라면 흙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일굴 때에 이룬다고 느껴요. 이웃들이 먹을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정갈하며 아름다운 흙에서 즐겁게 거두는 일이야말로 올바른 나라사랑이라고 느껴요.
곧, 시골에서 푸른 숨을 쉬면서 맑은 물을 마시는 삶이야말로, 보금자리를 지키고 마을을 가꾸며 나라를 살리는 길이 되는구나 싶어요. 이밖에 다른 무엇이 있을까요? 운동선수 되어 나라밖에서 수백 억이나 수천 억을 벌어야 나라사랑인가요? 컴퓨터 풀그림을 팔아 돈을 억수로 끌어모아야 나라사랑인가요?
책은 안 읽어도 죽지 않지만, 바람을 안 마시면 죽어요. 학교를 안 다녀도 안 죽지만, 물을 안 마시면 죽어요. 돈을 안 벌어도 죽지 않지만, 밥을 안 먹으면 죽어요.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 너무 높아서 아파트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한 노을이 콘크리트 벽 사이에 엉거주춤, 걸려 있었다 ..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
나는 우리 큰아이한테 자전거 한 대를 올해(2013년)에 선물로 사 주었습니다. 큰아이 자전거를 장만할 무렵 살림돈이 아주 바닥이 났는데, 마침 사진강의를 나갈 일 있어, 살짝 숨통을 텄어요. 서울로 사진강의를 하러 다녀오는 길에 읍내에서 자전거집에 들렀어요. 서울 가는 길에 읍내에 자전거 손질을 맡겼거든요. 읍내 자전거집에 맡긴 자전거 바퀴를 손질하고 집으로 돌아오려다가, 튼튼하고 가벼운 어린이 자전거 하나 눈에 뜨였어요. 마침 올해에 새로 나온 자전거이더군요. 이제 막 서울에서 살림돈을 벌어 시골집으로 돌아왔는데, 큰아이 자전거가 자꾸 눈에 밟혀요. 큰아이가 여섯 살에도 세발자전거를 타며 놀 수 없는 노릇이요, 한 해나 두 해 뒤에는 제 자전거를 따로 타야 합니다(큰아이가 여섯 살인 요즈음은 제 자전거 뒤에 샛자전거를 붙여 함께 타고 움직입니다). 조금 더 크면 큰아이 자전거를 장만할 생각이었지만, 이 자전거를 들여야겠다고 느꼈어요. 살림돈으로 쓰려던 돈을 그만 자전거집에 맡기고 큰아이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왔어요. 그런데, 막상 살림돈을 자전거 값으로 치르고 보니, 또 새로운 일거리 생기고, 이럭저럭 살림을 꾸릴 수 있더군요.
올 삼월에 큰아이 자전거를 장만하지 않았으면 우리 집 살림은 어떠했을까요. 이렁저렁 넉넉히 꾸렸을까요. 큰아이가 동생 세발자전거를 나누어 타면서 둘이 다투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아야 했을까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아직 아무 장난감도 사서 안기지 않았어요. 이웃한테서 선물받은 장난감이라든지 곁님 동생이 어릴 적에 갖고 놀던 장난감을 물려받기만 했어요. 자전거는 큰아이뿐 아니라 작은아이한테도 처음으로 장만해서 내민 선물이에요. 큰아이가 아홉 살 무렵까지 타고 씩씩하게 들마실 다닐 만한 자전거요, 작은아이는 누나한테서 물려받을 자전거입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 되면, 그무렵 훌쩍 자랄 몸에 맞추어 다른 자전거를 장만해 주어야지요. 작은아이가 아홉 살이 되면, 다시 누나 자전거를 물려받을 테고, 그 즈음 큰아이는 더 큰 자전거를 새로 얻겠지요.
아이한테 자전거를 장만해 주려는 뜻이 있기에, 나이에 맞게 차근차근 새로 장만해 줄 생각이에요. 우리 아이한테 자전거는 이 땅을 넓고 깊이 들여다보도록 돕는 다리가 될 수 있어요. 몸뚱이를 믿고 천천히 걸어다녀도 즐겁고, 자전거를 믿으며 한결 멀리 돌아다녀도 즐거워요. 자동차 아닌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곳까지 달리는 만큼 우리 삶자리로 삼는다고 할까요. 자동차로 싱싱 아주 멀리 달리기보다는, 두 다리와 자전거에 알맞춤하도록 우리 삶자리를 보듬는다고 할까요.
.. 나무는 어디에도 있다 / 철조망 두르듯 인도와 차도 가른 포플러만 아니라 / 출근길 더듬는 너의 눈동자 속에 / 책방에 깔린 졸리운 시집에도 / 청소부 아저씨의 쓸쓸한 소주잔에도 / 나무는 흔들리며 떠 있다 .. (나무는)
최영미 님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창작과비평사,1998)를 읽습니다. 꿈으로 나아가는 길에 밟은 자전거 발판 이야기를 가만히 읽습니다. 참말, 꿈으로 나아가자면, 자전거 발판을 밟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자동차 발판이 아니고, 우주선 발판이 아니며, 전투기나 비행기 발판이 아닙니다. 그예 자전거 발판입니다.
숲길이나 멧길에서는 자전거 발판을 밟지 않아요. 숲길과 멧길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때로는 어깨에 짊어집니다. 때로는 숲 어귀에 자전거를 세우고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걸어서 들어가겠지요. 숲에서는 전화기도 끕니다. 숲에서는 노트북도 안 씁니다. 숲에서는 사진기를 가끔 쓸 일이 있을는지 모르나, 참말 숲에서는 어느 것도 쓸 일이 없어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살갗으로 느껴요. 코로 맡고 혀로 살피며 손발로 맞이합니다.
..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 따뜻했었다 .. (옛날의 불꽃)
도시에서 살더라도 손으로 수저질을 합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혀로 맛을 봅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눈과 코와 귀와 입으로 온 삶을 헤아립니다. 도시사람이라서 오직 돈으로만 살지 않아요.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이 넘치더라도, 숨을 쉬어야 살아요. 댐으로 가두어 물꼭지 틀어야 마시는 물이라 하더라도, 이런 물을 마셔야 살아요. 생협 매장에서든 가게에서든 마트에서든 백화점에서든, 이것저것 사다가 밥으로 차려서 먹어야 살아요.
몸으로 살아가지, 돈이나 이름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나 학력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마음으로 살아가지, 언론이나 인터넷이나 정보나 책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몸으로 누리는 삶이에요. 마음으로 가꾸는 삶이에요. 몸으로 맞이하는 삶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최영미 님은 자전거를 즐겨 타실까 궁금해요.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즐겨 타실는지 궁금해요. 버스도 전철도 아닌 자전거를 즐겨 타실는지 궁금합니다. 때로는 자전거조차 가만히 세워 놓고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다닐까 궁금합니다.
자가용을 타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어요. 버스와 전철을 타면서도 얼마든지 시를 쓸 수 있다지만, 사랑을 빛내고 꿈을 밝히는 시를 쓰자면,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야 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바람과 물과 밥을 맞아들일 적에 삶이 되기 때문이에요. 바람과 물과 밥을 잊거나 잃으면 삶이 못 되니, 삶이 못 되면서 시도 노래도 무엇도 짓지 못하고 말아요.
바람을 읽고 써요. 물을 읽고 써요. 밥을 읽고 써요. 그러면 모든 삶이 시가 되고, 모든 삶이 이야기가 되며, 모든 삶이 노래가 되어요.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시집 읽기)